여행은 취향이 비슷한 친구와 할 때 즐겁다
홍콩에서 친구 W가 왔다.
6년 전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 알고 지내던 친구인데, 재작년 2017년 홍콩 여행을 할 때 다시 만났다. 밥도 얻어먹고 다음번엔 한국에서 만나자, 약속했는데 1년 후인 작년 2018년 초겨울 한국에 놀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가이드 역할을 자청했다. 보고서 마감기한 때문에 한참 바쁜 시기이긴 했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오는 일은 늘 신나는 일이었다. 친구를 핑계로 한국의 가 보지 못한 지역도 찾아보고, 좋아하는 여행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W는 학창 시절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을 한 적이 있고, 영국에서 3년간 학사 생활을 마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도 있어 여행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자신만의 여행 취향이 있었고, 능숙한 여행자들에게 있는 다양한 음식과 문화에 대한 관대함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 한국에서 먹어보고 싶은 리스트를 내게 알려주었고, 난 그 덕분에 별 고민하지 않고 맛집을 찾아보고 W를 데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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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친구 W의 서울 여행
11월 마지막 주 토 - 화
토요일: 도착. 자유여행
일요일: 오후에 만나서 홍대, 합정, 망리단길 구경 (홍일품 저녁식사, Kingscross 9와 3/4 카페)
월요일: 언더스탠드 에비뉴 - 혜화 낙산공원, 대학로 구경 -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서 저녁식사
화요일: DMZ 투어, 출국
나의 외국인 친구 중 게장을 먹고 싶다고 한 친구는 W가 처음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너무 맛있을 것 같다며. 홍콩에서 온 W는 해산물을 익숙하게 잘 먹었고, 무슨 음식이든 시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너무 좋아! 이런 친구들이랑 여행하면 가이드는 참 뿌듯하다.
마침 가보고 싶어 찾아둔 홍대 게장 무한리필 집이 있어 망리단길을 한참 걸어 다닌 후 주린 배를 안고 게장을 먹으러 갔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시켰는데 (아마 간장새우도) 친구 눈이 정말 휘둥그레졌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법을 가르쳐줬더니 너무 맛있게 먹고 게딱지를 세 번 더 리필해 먹었다. 난 간장게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양념게장을 시켰는데, 같이 간 친구와 W는 양념게장이 너무 매워 잘 먹지 못했다. 간장게장을 좋아한다면 이것만 시켜도 잘 먹을 것 같다.
그리고 친구가 홍콩에서부터 찾아둔 홍대에 새로 생긴 카페에 찾아갔다. 해리포터 영화를 모티브로 한 카페였는데, 사진 찍을 수 있는 스팟이 여기저기 있었다. 가오픈이라 했지만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 홍보가 되었는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대기시간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너무나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느라 자리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기 전 이미 1시간 이상 대기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녁을 먹고 왔는데도 줄을 서야 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트가 대여섯 군데 있었고, 해리포터에 나오던 물건들도 비치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긴 대기시간에 지친 우리는 여기 카페는 '한 번 오는 것으로 족하다'는 결론을 냈다.
다음날 월요일은 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 있는 언더스탠드 에비뉴에 잠깐 들렀다 낙산공원, 혜화동으로 이동했다. 언더스탠드 에비뉴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마 월요일 오전이라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던 것 같다. 구경할 수 있는 가게도 많지 않았고 친구와 서울에 이런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해주는 좋은 취지의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언더스탠드 에비뉴에 붙어있던 창업지원 공고문을 친구에게 설명해주니 W는 홍콩에 만약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거라고 했다. 청년층에게 너무 많은 (혹은 거의 전적인) 지원을 해 주어 창업을 도와준다면 사람들은 청년층이 게을러질 거라고, 혹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거라는 거였다. 한 사회가 가진 인식이나 가치관이 이렇게나 다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이 덜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가치관으로 바뀌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http://www.understandavenue.com/
언더스탠드 에비뉴에서의 일정이 생각보다 너무 이르게 끝나버려 난 아주 빠르게 머리를 굴려 다음 장소를 생각해내야 했다. 얼마 전 다녀온 혜화동과 낙산공원이 생각났다. 저녁 놀도 예쁘고, 조용히 구경할 곳도 많았다.
더구나 주말이 아닌 평일 대학로와 혜화동은 여유로웠다.
골목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여행을 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희한하게도 이런 풍경이다. 뭐 대단한 장면도 아니고, 친구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그 순간이 제일 좋다. 지나고 나면, 우리의 대화 내용은 아주 어렴풋이 만 기억나지만 그 시간 공기의 색깔과 주변의 소음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곤 한다.
W는 골목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고 액세서리도, 화장품도 좋아했다.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취향이 비슷한 우리는 다행히 대학로 근처에 있었고, 대학로에는 액세서리와 화장품을 구경할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W가 쇼핑하는 걸 도와주는 일은 즐거웠고, 기쁘게 반응해주는 친구를 보며 더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식사로는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한 W를 위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왔다. 서촌에 있는 곳인데, 은근 맛집이 많아 대학원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자주 방문한 곳이었다. 여기엔 진짜 맛있는 파전, 해물전, 칼국수를 파는 집이 있는데 삼겹살은 없기 때문에 조금 더 들어가면 있는 고깃집으로 갔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 다행히 곰장어를 같이 팔아 난 곰장어, 친구는 고기를 주문했다. 처음엔 갈빗살인가 항정살인가.. 잘 모르겠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돼지고기 부위를 주문했지만 다음엔 내가 추천해 대패삼겹살을 시켰다. W는 대패삼겹살은 처음 먹어본다고 했지만 완전히 마음에 들어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W와의 여행은 정말 즐거웠고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한다. W도 처음 방문한 한국이 이렇게 재밌고 좋은 곳인지 몰랐다며 너무 만족해했다. 가보지 못한 여러 장소는 다음번에 남편과 함께 방문하게 되면 갈 거라고 남겨두었다. 좋다고, 마음에 든다고, 최고라고 반응해주는 친구 덕분에 W를 데리고 다니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베풀어주고 싶었다.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여행이었고,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우리였기에 이번 여행이 더 즐겁게 포장되었던 것 같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여행은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