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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Oct 29. 2018

가을엔 구례.

 허술한 여행이 의외로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2015년 영국에서부터 알던 친구 L이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다.

L은 일 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첫가을이었다.


L과 나는 영국에서 종종 시간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L은 나의 한국인 친구들과 더 친했지.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L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방문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한 번씩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린 생각보다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L이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올 때쯤 우린 부쩍 가까워져, 함께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2015년이면 아직 내가 국내여행 아주 초보였을 때. 더듬더듬 여행지를 알아보다 우연히 친한 친구의 이모가 살고 계시다는 구례를 찾게 된 것 같다. 가을이고, 단풍이고 하니, 지리산이 생각났다. 등산은 싫어하지만, 지리산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가본 적이 있어서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에게 말하니 흔쾌히 그래, 구례로 가자. 결정됐다.


인터넷으로 우리가 묵을 숙소를 찾아보자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그중 우리는 제일 시골답고, 단아해 보이는 숙소를 골랐다. 별다른 고민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린 숙소 후기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한국에서 다녀본 게스트하우스 중 제일 마음에 들었으니까.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는데,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는 영화를 상영 중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아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나. 손님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노란 감을 까먹고 있었고, 우리도 곧장 짐만 풀어놓고 자리에 합류했다. 이제는 영화 제목도, 내용도 모두 가물가물하지만 손끝에 남아있던 단단한 감의 감촉과 로맨틱한 밤공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L과 나는 숙소를 나서면서 이런 곳에서 하루만 지내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재잘거렸다.


좋았던 숙소, 구례옥잠.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일찍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 노고단 정상까지 왕복 3-4시간 걸렸던 것 같다. 처음 무난한 높이에서는 웃고 떠들면서 올라갔지만 마지막 즈음에는 진짜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공포를 느끼며 올라갔던 것 같다. 2015년이면 한참 운동도 하지 않고 연구실 의자에만 앉아있던 때라 그런 것 같다. 사실 노고단은 엄청 경사진 코스도 아닌 것 같았지만, 그리고 다 올라갔다 와보니 별거 아니라고 느꼈지만 그 순간은 무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잘 올라와준 친구와 나에게 산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세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떠들었기에 우린 또 그만큼 가까워졌다.


구례의 한옥마을 운조루


우리 일정은 1박 2일이었기 때문에 지리산 등반을 마치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한 군데 정도였다. 운조루는 우리에게 가장 무난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었고, 시골마을의 정경도 누릴 수 있었다. 작은 곳이었지만 우리에겐 짧은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알찬 코스였다.


아직도 L과 대화를 할 때면 항상 그때의 여행 기억을 꺼내온다. 그날 저녁은 우리에게 정말 짜릿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멋진 숙소를 찾았다는 흥분감..! 그리고 다음날 구례의 가을 풍경과 들꽃, 노오란 들판. 담장에 기댄 석류나무. 모두가 기분 좋은 추억이 되었다. L과의 여행담을 하나 더 쓸 계획이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여행 중 최고는 구례였다. 계획도, 스케줄도 모두 허술했지만 의외로 좋아서 더 좋았던 여행이었다. 나에겐 여전히 가을 하면 구례가 떠오른다.


다음엔 섬진강 따라 자전거 산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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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친구 L과 구례 여행

1박 2일 여행 코스

교통수단: 자가용(서울에서 3시간 정도의 거리)

첫째 날: (저녁 도착) 숙소

둘째 날: 아침 지리산 노고단 등산, 오후 (3시경) 한옥마을 운조루 산책. 친구의 이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석류나무.
게스트하우스.
친구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카페. 섬진강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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