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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an 28. 2020

어떤 여성이 되어야 하는 한국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상처와 짐을 얻게 된다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운이 좋아 우월한 위치에 놓인' 남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남성들도 남성성으로서의 소외를 경험한다. 


새해가 밝으면서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와 남자 친구 사이에 어려움은 별로 없었지만 문제는 우리 부모님이었다. 그동안은 별말씀이 없으시던 부모님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본격적으로 걱정을 시작했다. 부모님뿐 아니라 외가 쪽 친척들까지 참견을 할 태세였다. "며느리 집안은 보지도 않고 들여오지만 딸 시집보낼 때는 사위 집안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라고 이모는 말했다. 딸이 고생하는 게 싫어서 "좋은 집으로 시집보내야 한다"라고 하는데 결국 딸은 보내야 하는 존재이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종속될 존재이다. 


결국은 독일에 가기 전 이주 정도를 부모님과 씨름하다 당분간 결혼을 포기해 버렸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지금 내가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를 열거했고 (매일 달라지는 이유), 여자로서 가장 행복한 삶은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조건 좋은 남편을 만나서 돈 걱정 안 하고 편하게 아이 기르면서 사는 거라고 나를 설득했다. 나와 남자 친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에도 부모님은 나보다는 남자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내 결혼이지만 주체는 남자 친구와 부모님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고, 내가 설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되어야 하는 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좋은 딸,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아내,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부모님과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용기도 없는 난 오히려 결혼을 당분간은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은 지금 독일에 온 이 시간까지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부딪히고, 또 답답하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여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에서 사는 법이다. 아마도 혼자서 끝나지 않는 이 고민을 안고 끙끙댄다면 문제는 하나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문제는 여자들이 함께 이야기해야 하고 토론해야 한다. 정말 여자로서 가장 행복한 삶이 조건 좋은 남편을 만나 돈걱정 없이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여성이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 힘들고, 어찌 보면 불행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 누구의 탓인 걸까. 우리나라에서 워킹맘으로 살기는 너무 힘들다. '나'의 이름은 살아있지만 다른 많은 한국의 워킹맘처럼 '일'도 하고 '집안일'도, '양육'도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불행하다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그보다 더 괴로운 건 나의 자식이 내 품 안에서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잘못될 것만 같은 사회가 주는 책망, 그리고 스스로가 내게 주는 힐책이다. 결국 그런 생각들이 모여 '그냥 돈 많은 집 시집가서 살걸', 이런 후회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럼 사회가 개인을 도와주어야 우리가 바뀌는 거 아닌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내 의식을 바꾸려 해도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단단한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느낌만 들뿐이다. 성평등을 말하면 '양성평등'으로 고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사람들은 정말 모르고 있다. 더 중요하고 긴박한 문제가 무엇인지.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직장도 번지르르하고, 집안도 좋고, 돈도 좀 있는 남자들 빼고는 결혼하는 게 쉽지가 않다. 여자 쪽 부모들은 '조건 좋은' 남편감을 찾고, 결혼을 하려면 최소한 집은 장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 집값이 얼만데. 여자가 혼수를 하고, 남자가 집을 해오는 일은 요즘 많이 없어졌지만 어른들 생각은 놀랍게도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모두 그 바탕에 '여자는 결혼하면 남자가 먹여 살려야 한다'라는 생각과 남편에게 종속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정말 우린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작년 여성학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발표 내용 중 한 부분이 인상 깊어서 따로 적어둔 것이 있다. 함께 공유하고파 이곳에 올린다. 


"Women is not a biological category. Rather a sociological category. No longer stick to the identity of women." (여자는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사회적 분류이며 여성의 정체성에 묶이지도 않는다)


여성학에서는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날 그 컨퍼런스에 울려 퍼진 메시지는 내게 더 큰 감동이었다. 그 시기에, 내게 더 힘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내가 되어야 할 것은 어떤 여성이 아닌 어떤 인간,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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