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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n 05. 2020

우리네 여자들은 왜 결혼을 했을까

"누부(누나)는 와 시집을 가아?"

"시집을 안 가고 죽으믄 처니구신이 돼서 집안을 망친단다."

"가지 마라!"

(박경리. 1993: 38쪽.)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딸들은 누구 하나 행복한 시집을 간 여인이 없다. 주인공 성수의 어머니 숙정은 자신을 연모해 찾아온 남성이 찾아오자 폭력적이던 남편에게 자신의 정절을 증명하고자 비상을 먹고 자살했다. 연순은 몸이 약해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노처녀가 되었다. 연순의 부모는 연순을 신분만 그럴듯한 허랑방탕한 남자와 짝지어 보내지만 결국은 김약국의 집안을 말아먹는 씨앗이 되어버린다. 봉희의 아들 중구와 그의 아내가 오순도순 사는 모습만이 간간히 비출 뿐이다.


시집을 가는 날이면 꽃가마를 타고 가지만 시댁 가는 그 길은 꽃길이 아니었다. 꽃가마는 동아줄로 꽁꽁 싸매여져 있었고,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머리에 익히고 마음에 새긴 규방 아씨에게 운명은 자신의 것이 아닌 가부장이 가져갈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가 나라에 많으면 재앙을 불러온다는 믿음이 있었단다(정지영 2004). 아마도 '여자가 시집을 가지 않고 죽으면 집안을 망친다'는 말은 이런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정부가 집안에 노처녀가 생기지 않도록 가장들을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면서 규방 아씨들을 결혼이라는 전쟁터로 보낸 것이다. 결혼은 여인들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여인들이 항상 억눌린 결혼생활을 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평등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까지는 양반가 여인들은 어려서 글을 공부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한 후에는 살림을 돌보고 집안일을 관장하는 일도 도맡을 수 있었다. 남편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때에는 아무렴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여인네도 있었다. 물론 소박맞은 여인네들도 많았다. 모든 조선의 여인들이 시집살이를 한 것도 아니었으니, 신사임당은 시어머니가 연로해져 자신이 시댁 살림을 물려받아야 할 때가 오기 전까지는 친정에서 아이들을 기르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신사임당의 어머니는 아예 그 남편 신명화가 장모님 댁과 서울 집을 오가며 지낸 덕에 친정 강릉에서 평생을 살았다 (박무영 외 2004).


하지만 조선 후기 유교가 심화되고 이후에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여성 몸에 베일 가리기는 더욱 강화된다. 여자는 모든 대소사에 가장의 허를 필요로 했으며, 일제시대에는 그것이 아예 '처의 무능력' 조항으로 공식화 되게 되었다. 여인네들은 남편에게 죽을 만큼 맞아도 이혼 소송하나 내지 못했지만 남편은 원하면 이혼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자신의 것이었다.


그때에는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것이 막막한 시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가부장제가 만연했던 나라라면 어디든 그랬다. 여인들이 어릴 적부터 공부했을 남성 학자가 집필한 '열녀전'이나 교훈서 등에는 어디에도 '여인이 혼인을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법'이라던지 '여인이 자신의 힘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는 법' 등은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사회의 틀 안에서 여인들은 자신의 삶을 지탱해왔을 거다.


그럼 이제 현재로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옛날이랑 비교하면 지금은 여자들이 목소리도 더 세고 남자들은 그 기에 찍 눌려 산다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정말 평등한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세 편의 이야기가 있다. J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고 남편과 셋이 산다. 남편과 J는 맞벌이 부부이고 남편은 일주일에 하루를 쉰다. J는 프리랜서라 어쩌다 보니 육아는 J의 몫이 되었다. 육아와 일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어렵다. 하루 종일 찡얼거리는 아이를 붙잡고 있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고,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추어서 식사를 준비한다. 남편은 자신보다 아이를 훨씬 잘 인내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자신도 아이와 일주일에 한 번, 저녁 한두 시간만 함께 보낸다면 그렇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가 제때 커주지 않는 모습이 보이면 자신이 일을 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못 돌보아서 그런 것 같은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B는 연애에는 관심이 있지만 결혼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지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 '결혼은 하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은근히 결혼을 바라는 부모님과 결혼하지 않고 늙어갈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E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미 모든 걸 파트너와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남독녀의 외동딸을 쉽게 내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E의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결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열거한다. 특히 '너'와 '너의 파트너'가 결혼한다면 그렇게 될 거라는 식으로 자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은 계속해서 미뤄진다.



세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모두 다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마 너무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마 2-30대 여성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여자도 능력 있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바로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왜 아직도 결혼을 하고, 또 하려고 있을까? 여성에게 결혼의 사회적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만 같다.


결혼에 있어서는 아직도 여성은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고, 결혼 후에도 사회가 주는 기대와 압박에 쉽게 노출된다. 그래도 드라마 저편에서는 아직도 '(예쁜) 여자와 돈 많고 능력있는 멋진 남자가 만나서 행복하게 결혼했대요'로 이야기를 맺기에 많은 아이들은 그 꿈을 꾸며 자라는 걸까?


나는 나 조차도 왜 결혼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공부한 바로는 여성은 결혼을 하면 잃는 게 너무 많다. 그런데 왜? 결혼하고 싶은 거지?라고 굳이 물어본다면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된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우리 집 역사와 배경도 설명해야 한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내가 부모와 친구에게서 들어온 결혼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이 시대사조를 뚫고 사는 일은 고단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많은 딸들처럼 고분고분 시집가고 싶지는 않다. 용옥처럼, 아편중독자 남편에게서 첫사랑과 친정어머니를 한꺼번에 빼앗기기도 싫고 용란처럼 한 번도 사랑을 주지 않은 남편을 따라가다 배에 가라앉아 죽고 싶지도 않다. 그때 여인들은 참 모질게도 살아야 했다. 우리네 여인들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역사를 이어받은 우리는 어떤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정지영. 2004. 혼인장려책과 독신여성: 유교적 가부장제와 주변적 여성의 흔적. 한국여성학 20(3) 5-36.

박경리. 1993. 김약국의 딸들. 나남출판.  38쪽.

박무영 외. 2004.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돌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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