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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n 18. 2020

결혼이 너무 비싸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서로 모은 돈을 열어보았다. 계산해보니 부모님 도움 없이도 결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은 우리가 하는 거니까'라는 마음에 준비를 시작했다. 식장을 알아보고 이런저런 소소한 계획까지도 세웠다. 언제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하고 결혼을 공식화하려는 순간 우리의 결혼은 멈췄다.


부모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기대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 정도 기대치가 대한민국 평균값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연애를 시작한 친구가 있다. 만난 지 3개월밖에 안되었지만 벌써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단다. 경제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다 되어있다는 말을 하는 나의 친구는 직장인 5년 차였고, 친구의 남자 친구는 건물과 자가가 있다고 했다. 순간 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정도는 되어야 결혼하는 걸까?' 4년의 시간과 믿음이 결혼을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이?


토요일에 자주 보지 못했던 친척을 만났다. 오래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이유를 묻자 '집에 빚이 많고 경제적 상황이 빠듯한데 결혼을 상상하지 못하겠다'라고 대답했다. 연애가 바로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전제도 우스웠지만 보통 사람들이 결혼을 대하는 태도를 새삼 곱씹게 되는 대답이었다.


싱가포르 친구의 결혼식

내게는 결혼한 한국 친구들보다 결혼한 외국 친구들이 더 많아서 결혼을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던 걸까. 나는 내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그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와 경제적, 학력 배경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 줄은 몰랐지.


언제부터인가 남자는 집을, 여자는 혼수를 해와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아마도 6.25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진 가족법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1958년 제정된 민법 826조 (2)에 의하면 부부의 동거는 부의 주소나 거소에서 한다고 하니, 부부가 살 집은 남자가 준비해야 하는 법일 터. 결국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가부장적 법이 남자들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여성에게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는데, 혼수를 해온 여성은 이후 가능해진 합의이혼에 있어서 재산분할을 하려고 보니 자신에게 남는 건 이미 중고품이 된 가전제품밖에 없었더라, 하는 이야기가 한동안 돌아다녔다.


좋은 집안에 시집가려고 대출을 받아서까지 혼수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내 친구들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너 정도면 더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야지'라는 말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쉽게 뱉어대는 답답한 사람들이 즐비하다는 것도 정말 몰랐다.  


요즘 누가 남자가 집을 준비해? 같이 준비하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혼은 비싸다. 나는 유학생이라 집은커녕 혼수품도 필요 없다. 집은 이미 독일에 마련해놓았고, 장학금을 주는 재단에 내게 남편이 생겨   집으로 옮기고 싶다 말한다면 재정적 지원을 해줄 것이다. 그런 사람조차도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면, 결혼에는 얼마의 돈이 필요한걸까.


과거부터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특히 남성에게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의식이었다. 그렇지만 여성에게도 결혼은 같은 의미였을까? 아니면 고생이 열리는 문이었을까? 그것을 알기에 우리네 어른들은 결혼을 그렇게 비싸게 만들어 버린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간과 사랑을 낭비하면서 결혼을 사치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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