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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n 20. 2020

엄마 성 따르기, 우리도 할 수 있을까

드디어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독일에 가기 전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은 나중에 하는 걸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말이 바뀔까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했다.

 

혼인신고서 양식을 작성하는데 반짝 눈에 뜨이던 성 본의 협의  항목. 이 순간을 기다려와 남자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 태어나지도,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성을 결정하는 일을 왜 혼인신고를 할 당시에 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지 못하지만 미리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이미 아이에게 나의 성을 물려주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난 한번 더 물어봤다. '자녀의 성, 본을 모의 성, 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셨습니까?' 남자 친구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도 몰랐다. 아이에게 나의 성을 물려준다는 의미는 우리 둘의 성을 함께 물려줄 수 없고 나만의 성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드디어 시청에 도착해 서류를 전달하니 직원분이 우리가 몰랐던 그 부분을 알려주셨다. '엄마 성 물려주시려고 하는 거 아니죠? 그러면 아빠 성은 못써요' '이거 한 번 등록하면 못 바꿔요' 막상 이렇게 겁을 주시니 고민이 되었다. 어쩌지?


스페인처럼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의 성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부모님 두 사람의 성을 쓰고 싶다면 한 사람의 성은 성으로, 한 사람의 성은 이름으로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둘 다 '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중요한 문제였다. 나에게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중요했고, 남자 친구에게는 사회적인 의미에서 중요했다.  


우리나라에서 엄마의 성을 따르는 항목이 생겨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를 우리의 아이가 그런 진보적인 발걸음을 내딛는데 조금 앞장서면 그 아이도 자랑스러워할 거라 생각했다. 사회적 편견을 깨고,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라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남자 친구는 부모님의 반대를 걱정했다.


우리나라는 부성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별일 없으면 아빠 성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왜? 그냥 옛날부터 해왔던 일이니까. 그렇지만 호주제도 폐지된 이 마당에 부성주의라니.

부성주의로 인해 아이들이 받는 피해도 크다. 아버지의 자식은 아버지가 결혼을 하건, 재혼을, 이혼을 하건 성(姓)의 변화가 없는 반면 어머니의 자식은 계속 바뀌기 마련이니 정체성 혼란도 더 클 수 있다.


호주제는 2005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부계제와 가부장제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아직도 나의 또래 남자 친구들 중에는 'X'씨 가의 장남이고 대를 이어갈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란 소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집간 여자 중 절반은 아마도 이름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며 살다 가겠지.


남자 친구는 결국 부모님께 이 안건에 대해 말씀드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혼인신고를 미루기로 했다. 반면에 나는 이 문제야말로 나와 남자 친구가 서로 끊임없이 논의하고 토론해서 결론을 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건 '누구의 피'를 물려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대에서 누구의 성을 주느냐의 문제이고, 우리 자식은 또 당사자들끼리 누구의 성을 줄 것인지를 정하면 될 것이니까.


나의 엄마는 이 문제에 대해 '아빠가 자기 성 물려주는 걸 알면 엄청 좋아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듣는 것도 참 아이러니했다. 결국은 어느 남자의 성이 오래가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결국은 나의 성도 아빠에게서 받은 성이니까. 친구는 아예 자신이 먼저 엄마의 성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징적인 것들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내가 만약 이 싸움에서 실패하더라도, 나의 자식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너도 나도 아빠의 성을 물려받은 사람이 아닌, 어떤 사람은 엄마에게서, 어떤 사람은 아빠에게서 성을 받아 모두 공평해질 수 있겠지. 부모의 힘에, 사회의 힘에 장악되어 포기하지 않고 평등한 삶을 지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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