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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n 26. 2020

결혼 환타지에서 한 발짝 물러서 보기

독일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결혼이라는 주제가 늘 내 곁을 맴돌았다.

친구들과 만날 때도, 친척과 만날 때도 나의 결혼 계획은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했고, 그들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다(도대체 왜?) 나는 매번 사람들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이 결혼할 만한 사람인가를 입증해야 했고, 결혼을 하면 어떻게 살 것인지도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논리를 펼치며 결혼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를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나도 모르게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도 작년부터 결혼하고 싶어 했다. 벌써 만난 지 4년이 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왜 결혼 안 해?' 이렇게 묻는다나. 주변 친구들도 하나 둘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부모님도 채근하신다니 내게도 그 독촉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결혼의 장점을 하나 둘 나열하는 게 일 년이 넘다 보니 나도 어느새 설득당하고 있었다.


결혼할 나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한국 나이 서른을 넘기니 '슬슬 결혼할까' 생각이 들긴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한 친구들이 작년과 올해 줄줄이 사탕처럼 결혼을 해버리니 고것 이상하게 좋아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내게는 부모님에게서의 독립이라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마음에 들었다. 결혼하면 나를 끊임없이 가둬두려는 부모님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결혼을 다시금 생각했던 계기가 지난번 혼인신고 사건이었다. 급하게 혼인신고를 먼저 하려 했지만 남자 친구 부모님의 모성 따르기 거부에 막혀 혼인신고는 무효로 넘어갔다.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 입장을 주장하셨고, 남자 친구의 부모님도 입장을 굽히지 않으실 것 같았다. 아쉬웠지만 일이 엎어지고 나니 명확해진 건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기에는 아무것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구나.' '부모님은 내가 결혼을 한다 하여도 간섭을 멈추지 않으시겠구나.' 결혼을 하고 나면 나의 이름도, 시간도, 이력도 포기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은 어쨌든 분명했다. 하지만 난 그만큼 이타적이지 못했다. 어렸을 땐 '여성이라면' 누구나 현모양처를 꿈꾸는 줄 알았지만 크고 보니 그건 내가 가고 싶던 길과는 너무 달랐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얼마 전 결혼한 친구를 만났다. 신혼의 꿀잠에 빠져있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그 친구는 이제 깰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벌써 깨어있었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내게 결혼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결혼 왜 하려고 해? 하지 마. 혼자 살어."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었을까. 그것보다는 시댁과 얽혀있는 모든 어려움이었던 것 같다. 우리 어른들은 말한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고. 며느리는 그 집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버리고 '새아가'의 위치로 조정된다. 그리고 두 가문이 '결합'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 너무 힘들어진다. 부모가 보기에 아닌 것 같아 충고하고 조언하려 하는 순간 부부의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 수백 배 불어난다. 나는 이렇게 얼기설기 엉킨 관계를 잘 다듬어 갈 자신이 없어졌다.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가 더 이상 나를 간섭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사라지자 우습게도 결혼에 의미부여를 했던 나도 겸허해졌다.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일까?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라는 당연한 이유는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벗어나고 싶었다. 순진하게도 결혼을 통해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결혼의 세계로 입문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실 결혼은 또 다른 가족의 탄생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삶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결혼보다는 동거의 형태와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여성의 성모럴이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그 점이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결혼을 생각했나 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그동안 나의 목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서 종용하느라, 남자 친구가 원해서, 부모님이 반대해서.. 결혼하려는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직도 남녀가 평등한 결혼이라면, 그리고 부모님에게서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면 결혼이라는 걸 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일이란 아득히 멀어 보인다. 오히려 지금은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것이 더 쉬워 보이기까지 한다.


박경리의 소설 '성녀와 마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형숙이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처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진취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였고, 솔직하고 능력 있는 그 시대에는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마녀', '요부'라고 손가락질당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멋진 여성이 된다. 형숙은 독립적인 자신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의 가족에게로의 결혼을 거부한다.


"안수영씨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저는 일생을 감정의 노예로서 살 순 없단 말입니다"

"왜 감정의 노예로 살아야 하나?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대등했을 때의 이야기죠. 안선생은 명문의 자제, 저는 탕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여자, 탕녀의 딸에겐 탕녀의 아들이라야만 제격이고, 호흡을 같이할 수 있거든요."

...

"남의 예를 들지는 마세요.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은 개개인이 다 같을 수는 없어요. 저는 저의 느낌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세상의 풍습과 제도가 개혁되지 않는 이상 저의 감정도 개혁시킬 수는 없어요."

                                                                            (박경리 1960, 성녀와 마녀, 인디북, 79,81쪽)


너무 늦었다고도, 이르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믿는다. 다만 나의 목소리를 존중해주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를 느낀다. 그런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고, 그동안 나와 남자 친구는 조금 더 준비할 수 있을 거다. 내게는 나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필요하고,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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