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UI는 모든 안전 가이드라인을 위반하고 있다."
2012년 CES에서 테슬라 부스를 보며 든 첫 생각이었습니다. 당시에 차량용 모바일 앱을 디자인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 앱이었지만 운전 중 사용하는 앱이라 차량용 소프트웨어의 안전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했습니다. 한 화면에 표시하는 정보의 양, 한 태스크를 완료하기 위한 스텝 수, 스크롤이나 드래그 제약까지. 특히 협력하던 독일,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더욱 엄격한 가이드를 요구했습니다.
결과물은 투박했습니다. 사용하기 불편했고, 사용자들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전은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라며, 어느 분야보다도 가이드라인이 엄격하게 지켜져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CES에서 테슬라의 운전자용 소프트웨어를 봤습니다. 당시 테슬라는 생소한 회사였지만 '일론 머스크가 투자했다'는 소식 덕분인지 부스 주변엔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저도 차에 타서 봤는데, 커다란 화면에 글씨는 작고 정보량은 많았으며, 화면분할로 여러 기능을 동시에 제공했고, 인터랙션과 UI는 마치 태블릿 앱 같았습니다.
그때는 '출시 전의 프로토타입이겠구나, 실제 출시될 때는 가이드라인을 지키겠지' 싶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는 그 UI 구성을 그대로 출시했습니다.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자율주행을 추구하는 수준의 운전 보조 기능으로 운전에 덜 주의를 기울이고 차량 소프트웨어를 조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기존 가이드라인의 전제 조건 자체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 경험이 금융 앱 UX 디자인을 하면서 떠오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금융 앱도 그때의 자동차용 앱처럼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들이 많습니다. 금융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금융 앱의 어려움도 근본적으로 UI 개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UI를 편하게 만들고 용어를 개선해도, 현재의 보안과 인증 절차를 유지하면서 사용자가 스스로 복잡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바뀌지 않는 한 본질적 한계는 그대로 남아있을 겁니다.
만약 금융 앱 사용성에 진정한 혁신이 일어난다면, 그건 UI만의 혁신은 아닐 겁니다. 테슬라처럼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복잡하고 반복되는 인증 절차 대신, 항상 사용자를 인증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 필요 없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금융상품들. 금융 사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
진정한 혁신은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데서 옵니다.
테슬라가 운전자의 역할을 재정의했듯이, 금융 앱의 미래도 사용자와 금융의 관계 자체를 바꾸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용자가 금융 앱을 열 때마다 느끼는 그 조심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나저나 그때 테슬라 UI 벤치마킹을 할 게 아니라 주식을 샀으면 지금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