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골드는 『풍요의 경제학(Plenitude)』에서 자신이 일생 동안 ‘정크족’을 위해 쓰레기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과잉 생산과 소비, 그리고 그 속에서 창작자들이 무심코 만들어내는 것들의 무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죠. 지금의 디지털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앱 마켓에는 저품질의 앱들이 무분별하게 등록되고 있습니다. 버튼이 눌리지 않거나, 화면이 기기 화면을 벗어나 찌그러지고, 텍스트가 겹쳐 읽히지 않는 건 기본이고, 예상과 전혀 다른 기능이 작동한다거나 하는, 디자인과 개발 과정에서 최소한의 검토도 거치지 않은 흔적들이 사용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기능은 있어도 맥락은 없고, 설계자의 책임감은 보이지 않습니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을 내지만, 대충 만든 인터페이스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게 세상에 내놓곤 합니다. 뭘 만들기만 해도 의미가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앱도 넘치고 기능도 넘칩니다. 사용자는 이미 충분히 피곤하고, 우리가 만든 ‘조금 불편한 것 하나’가 그 하루를 더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버려진 디지털 쓰레기는 현실의 쓰레기처럼 쉽게 치워지지도 않습니다. 누군가의 일상이 되고, 플랫폼에 남고, 검색 결과에 오래 머뭅니다. 치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체로 다른 사람의 몫이 되죠.
기획자든, UX 디자이너든, 개발자든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리듬과 시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단 생산된 디자인은 여러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능보다 먼저 필요한 건 메이커로서의 소명의식과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