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이 파란색인 이유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맥락을 고려한 선택이었습니다. 작가는 어린이 잡지 표지를 분석해, 노란 배경과 빨간 글자 속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로 파란색을 골랐습니다. 그 결과 도라에몽은 잡지 표지에 훨씬 더 자주 등장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더 많은 아이들의 눈에 익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잘 띄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독자의 시선을 따랐던 거죠.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예전에 양재천을 산책하다가 ‘양재천 사진 공모전’ 포스터를 보고, 평소 찍어둔 사진들 중, 더 마음에 드는 다른 사진들이 있었지만, ‘칸트의 산책길’ 배경 사진을 골라 출품했습니다. 서초구가 새로 조성한 그 곳을 홍보하고 싶어할 것 같았거든요. 결과를 보니 대상 수상작은 그 장소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물론 제 사진은 아니었지만요. :(
시험에도 비슷한 사고가 통합니다. OX 문제에서는 ‘참’ 진술이 더 자주 등장합니다. 거짓 문장을 자연스럽게 구성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 때문입니다. 또, 잘알려진 바와 같이 보기 중에 ‘항상’, ‘절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오답일 가능성이 높고, 서로 비슷한 보기가 두 개 있다면 그중 하나가 정답일 확률이 높습니다. 문제를 푸는 데에도 출제자의 사고를 상상하고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런 사고는 또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로또 번호를 고를 때 당첨 시 더 많은 상금을 독식하고 싶다면 31보다 큰 숫자를 포함해서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과 연관된 숫자(1~31)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패턴을 고려하면, 당첨 시 다른 사람과의 중복 당첨 확률을 낮출 수 있죠. 상대의 선택 패턴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는 사고라는 점에서 본질은 유사합니다. 어차피 당첨은 안되겠지만요.
비슷한 맥락에서, 돈 노먼은 한 학회에서 말하길, 학술 논문을 디자인 저널보다 Harvard Business Review(HBR) 에 게재하는 걸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디자인 저널은 디자이너들은 보지만, 실제 의사결정자들은 HBR을 보기 때문이죠. 중요한 건 내가 어디에 글을 내고 싶은가가 아니라, 상대가 어디에서 그것을 보게 될지를 먼저 고려하는 것입니다.
UX 디자인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배달 앱에서 ‘배달원 현재 위치’보다 ‘도착 예상 시간 15분’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직관적입니다. 전기차 충전 앱도 '배터리 잔량 40%'보다 ‘주행 가능 거리 약 180km’를 알려주는 쪽이 더 실용적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남은 시간 4분 25초’를 표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은행앱에서 '자동이체 잔액이 부족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24,000원 입금이 필요합니다’ 라고 사용자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입니다.
창작이든 문제풀이든 디자인이든,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상대는 무엇을 보고, 듣고싶어할까?’ 라는 질문이 먼저입니다. 디자이너에게 공감능력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포스팅에 더 적합한 커버이미지 대신 제가 넣고 싶은 사진을 넣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