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을 넘어선 경험의 가치

건축과 UX의 미학

by 진영규

“건축 세계가 실용적인 기준만 만족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은, 약간의 물과 식량이 있고 독을 먹거나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가능성이 없다는 보장만 있으면 좋은 인생이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세라 골드헤이건의 『공간혁명』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멈칫 했습니다다. 익숙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잘 돌아가기만 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용할 수는 있어도, 사용하고 싶어지진 않을 겁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건축에서 안전성과 기능성은 필수라고 여기지만, 디자인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구조는 디지털 제품에서도 반복됩니다. 앱에서 UX는 때로는 “일단 기능부터”라는 우선순위에 밀리고,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손보자는 대상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기능만 있다면, 왜 어떤 앱은 기억에 남고, 어떤 앱은 삭제되고 마는 걸까요?


카라칼라 욕장의 천장은 45미터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죠, 천장이 2.5미터여도 목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45미터라는 높이는 사람을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이끕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공간이 다르면 경험이 달라지듯, 앱도 단순히 동작하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미적 즐거움을 위한 디자인과 기능을 위한 디자인 사이의 차이가 실제로는 매우 미미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능이라고 여기는 요소에도 감정은 스며 있고, 보기 좋게 만든 것이 오히려 사용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결국 디자인은 감정적인 장식이 아니라, 사용성과 경험의 조건이 됩니다. 잘 설계된 인터페이스는 곧 기능이고, 그 기능이 감정을 건드릴 때 우리는 그것을 ‘경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UX를 실무에서 설득할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능이 먼저예요.” 그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잘 돌아가는 앱은 ‘쓸 수 있는 앱’이고, 잘 느껴지는 앱은 ‘다시 쓰고 싶은 앱’입니다. 그 차이는 바로 "약간의 물과 식량이 있고 독을 먹거나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가능성이 없다는 보장이 있는 삶"과 행복한 삶 사이의 경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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