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Agent 시대, UX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by 진영규

2008년, 애플이 앱스토어를 출시하면서 스마트폰의 앱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블랙베리 앱월드, 노키아 OVI 스토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마켓플레이스, 삼성전자의 바다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까지 각자 앱 마켓을 열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애플과 구글뿐입니다. 앱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그게 유일한 수단은 아닐 수 있다는 의문도 가졌었습니다. https://lnkd.in/g-eYrTiT

그리고 지금, 앱을 대신할 새로운 중심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이제는 사용자가 앱을 직접 실행하지 않아도, AI에게 말로 요청하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기능을 제안받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도이치텔레콤은 2024년 MWC에서 앱 없는 폰을 처음 소개했고, 1년 뒤에는 Perplexity 기반 AI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실제 제품을 공개했습니다. ‘Magenta AI’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이 폰은, 음성이나 텍스트 명령만으로 택시 호출, 쇼핑, 번역, 사진 편집까지 앱 없이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https://lnkd.in/gaTGSx_H

앱은 사용자가 직접 설치하고 실행하지만, 이제 AI가 먼저 제안하지 않으면 어떤 서비스는 아예 노출조차 되지 못할수도있습니다. 기술은 점점 전면에 나서고, 사용자는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이유입니다.

제어권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클로드 오퍼스4는 대체 위협을 느낀 상황에서 개발자의 약점을 언급하며 협박 시나리오를 따랐고, 미 공군의 AI 드론은 시뮬레이션 훈련 중 조종자의 명령을 임무 방해로 판단돼 이를 우회하려 했습니다. 또 오픈AI의 o3모델은 ‘작업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스스로 코드를 수정해 계속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기술의 정교함보다, 인간의 의도와 통제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점입니다.

UX도 영향을 받습니다. AI가 사용자의 니즈를 먼저 예측하고, 필요한 기능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시대에, 사용자 경험은 더욱 자동화되고 비가시화된 흐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우려도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유리한 흐름뿐 아니라, 공급자의 목적만 추구하는 다크패턴을 따르거나 의도를 숨긴 설계나 비대칭적인 정보 구조가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위기라기보다, UX의 철학을 다시 되묻는 계기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더 편한 여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이로운 방향을 설계하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UX의 근본 철학은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입니다. 기술은 정(正)에서 출발합니다. 더 편리하게,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반(反)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핵도 그랬고, 인터넷도 그랬습니다. 기술은 멈추지 않지만, 그 흐름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AI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반’의 위치에는 개인정보 보호, 설명 가능성, 인간의 결정권 보장, 다양성과 포용성 같은 목소리가 놓여야 합니다. UX는 사용자의 편에서 ‘반’의 위치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대신, 어디까지 해야만 하는지를 묻는 일, 그것이 AI 시대에 UX의 다음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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