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끝자락, 강화도 전등사에서
"부처님 보러 가자."
봄을 맞을 준비로 분주한 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강화도 전등사를 찾았습니다.
저는 계절마다 절을 찾습니다. 흘러간 사람들의 자취와 염원이 겹겹이 쌓여 절은 매일 새롭게 태어납니다. 공간에 남은 누군가의 소망과 열망, 체념이 저를 차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마다 다시 절을 찾곤 합니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찰로 구불구불한 흙길이 이어집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일상의 소리가 조금씩 멀어집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일주문이 보입니다. 사천왕상이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선 듯 숨이 고요해집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저는 제일 먼저 대웅전으로 향합니다.
대웅전 앞 댓돌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제 신발도 다른 이의 신발 옆에 조심스레 놓입니다. 세월의 손길이 닦아놓은 바닥에 앉습니다. 대웅전 중앙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부처님을 바라보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나 요즘 힘들었다고,
점점 바라는 게 많아진다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바라고 싶다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내 주위에서 부처님께 인사드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몇 차례 다른 이의 얼굴로 바뀝니다. 그냥 그렇게 다섯 살 어린아이가 되어 투정을 부립니다. 올려다본 부처님의 얼굴에서 슬쩍 미소가 보입니다. 어처구니없는 투덜거림도 매일 이렇게 받아주다 보면, 부처님도 지치시지 않을까요.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어주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댓돌 위에 놓인 신발에 다시 발을 밀어 넣습니다.
그렇게 저는 늘 절을 찾습니다.
오늘은 전등사입니다. 평소 남편과 둘만 다니던 이 공간을 다른 가족들과 함께 왔습니다. 여섯 살 조카의 손을 잡고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가는 길목마다 누군가의 소망을 쌓은 작은 돌탑들이 또 다른 이의 소망을 기다립니다. 저도 발걸음을 멈춥니다. 여섯 살 아이의 손바닥만 한 돌탑 위에 돌멩이 하나를 더 올려봅니다. 조카도 저를 따라 해 보지만, 아직은 돌을 얹는 일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자꾸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가 원망스러웠는지 얼굴이 조금 굳어집니다. 작은 염원이 아직은 그리 간절하지 않았던 걸까요. 바닥 한 구석에 돌멩이를 툭 던지고 다시 제 손을 꼭 잡습니다.
한결 따스해진 봄바람 속에서 여섯 살 아이가 작게 속삭입니다.
"부처님이 누구야?"
"부처님은 이 절의 주인 할아버지야. 우린 지금 주인 할아버지께 인사하러 가는 거야."
아직 부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전등사는 그저 알록달록 칠해진 옛집이 있는 곳일 뿐이겠지요. 그렇게 대웅전을 들러 부처님께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마친 아이는 다시 제 손을 꼭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부처님은 어디 있어?"
주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고 했는데, 아이가 생각한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이상한가 봅니다.
그 모습을 보던 제 남편이 한 마디를 툭 던집니다.
"부처님은 네 마음에 있지."
아이는 삼촌의 말에 눈이 더 동그래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저와 삼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이 황당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입술 끝으로 살짝 눌러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말이 제 귓가를 맴돕니다.
부처는 네 마음에 있지.
어쩌면 제가 절을 찾는 이유가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투정과, 감히 남에게는 쏟아낼 수 없는 원망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