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못한 자리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이제 저는 2학년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제 주위를 둘러싼 물건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자리를 지킵니다.

교실 게시판에는 저와 함께 10년을 보낸 한지 나무가 색이 바랜 종이 잎사귀를 틔운 채 서 있습니다.

걸려온 전화에 "네, 2학년 0반입니다."라는 말로 첫인사를 건넵니다.


마치 2025년은 없었던 일인 것처럼, 저는 그렇게 2026학년도를 맞았습니다.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아쉬웠는지, 차마 놓지 못한 흔적이 제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제 영어 이름이 적힌 손수 만든 열쇠고리

맹구가 지키고 있는 '선생님 사랑은행' 미니카드

획은 엉망이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문고 '지과필개'를 담은 책갈피


모니터 한 귀퉁이에도,

매일 쓰는 물건을 담아둔 작은 바구니 앞에도,

제 책상 뒤 게시판 한 귀퉁이에도

작년 아이들의 마음이 툭 던져진 채 남아 있습니다.


보내줘야 할 시간인데, 아직은 보내기가 아쉽나 봅니다.


작년 제 교실을 쓰게 된 선생님께 잠깐 다녀왔습니다.

제가 찾은 교실은 더 이상 저와 아이들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선생님의 물건과 생활 도구들이 교실 앞뒤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내 아이들과 웃고 떠들던 시간의 자리는 사라지고, 그 기억은 제 안에서, 제가 남긴 글 속에서만 머물게 되었습니다.


구석구석 교실을 소개하다 보니, 아이들의 흔적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졸업식 전날, 이제 저보다 한 뼘은 더 커버린 아이들이 선생님도 닿지 않는 칠판 위까지 먼지를 닦아주고는 씩 웃어 보였던 얼굴.

책장 뒤로 넘어간 도서관 책을 찾겠다며 힘센 아이 몇몇과 낑낑거리며 책장을 끌어내던 모습.

바닥에 쌓인 먼지에 다들 두 손으로 입을 막던 아이들.

사물함 속 전년도 언니, 오빠들의 흔적을 지우다 울상이 되어 지우개 하나를 통째로 다 써버린 아이.


모든 곳이 흔적이었습니다.


교실에 대해 짧게 안내를 해주다, 결국 속마음 한 조각이 튀어나왔습니다.


"선생님, 이 교실 정말 잘 오신 거예요. 작년 저희 반 아이들 정말 예뻤어요."


제가 행복했던 이 순간이,

이 교실을 쓰는 올해의 선생님께로 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마지막 의식이었을까요.


제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흔적마저 이렇게 마무리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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