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를 보다

3월 첫날, 철원에서

3월이 찾아왔습니다. 맨살에 닿는 햇살이 따뜻합니다.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겨울이 때로는 바람에 찬 기운을 실어 보내지만 달력의 숫자까지 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저는 농촌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주위의 논밭이 아직 자연의 손길을 간직하고, 농촌이라 하기에는 30층 이상 솟아 있는 아파트와 10차선 도로로 만들어진 콘크리트의 세계가 단단합니다. 저는 이런 우리 동네를 좋아합니다.


편리했던 잿빛 세계에서 계절을 알려준 건 숫자였습니다. 30을 넘는 숫자에는 더위를 준비해야 했고, 0 아래로 떨어지는 숫자에는 추위를 대비해야 했습니다. 지난 20대와 30대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숫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30대 끝자락에 이사를 왔습니다. 아직 자연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집 앞에 극장과 백화점, 지하철은 없어도 실개천과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따뜻해진 공기 사이로 개구리 소리가 스며듭니다. 더위를 식히며 개천을 따라 백로와 왜가리가 걸어 다닙니다. 추워지기 시작하면 머리 위로 기러기가 떼를 지어 지나갑니다. 서로 이야기 나누듯 꽥꽥 소리를 내며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갑니다.

여섯 해를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이제는 숫자가 아닌 풍경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낍니다.


오늘은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동네보다 더 한적한 곳입니다.

철원은 두루미가 잠시 겨울을 보내는 곳입니다. 기러기로 계절을 느끼는 저희 동네와 달리, 철원은 두루미로 시간의 변화를 느끼는 듯합니다. 더워지기 전이면 두루미도 저희 동네 기러기처럼 모두 여행을 떠나겠지요.


겨울의 끝자락, 마지막 남은 두루미를 보기 위해 철원으로 향했습니다. 조류독감의 여파로 예정했던 곳은 들르지 못했지만, 이차선 도로를 따라 펼쳐진 들판 위로 두루미가 뒤늦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지난겨울 수확을 마치고 벼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 사이로 두루미가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짧은 다리로 엉덩이를 흔들며 아장아장 걷는 기러기 무리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떼를 지어 움직이는 기러기와 달리, 두루미는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씩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왜 이 아이들은 함께 다니지 않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두루미는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머리에 붉은빛이 선명한 성인 두 마리를 중심으로, 그 뒤를 털갈이를 시작한 회색빛 새끼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둘인 가족, 아이가 하나인 가족, 아이가 없는 가족. 저마다의 형태로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혼자 서 있는 두루미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논 한가운데, 긴 다리로 우뚝 서 있는 아이였습니다. 짝을 잃은 건지, 아니면 가족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쭉 뻗은 이차선 도로 너머, 인적 하나 없는 겨울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겨울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아직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는 그 모습이.


왜 그 아이가 눈에 남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이루고 있는 두루미들 사이에서, 저는 유독 혼자 서 있는 한 마리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빠져나간 들판은 넓었고, 바람은 잔잔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저 거기 서 있었고, 저도 잠시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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