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날, 2학년 교실에서
오늘은 3월 첫날입니다. 저는 올해 2학년 담임입니다.
1학년 티를 벗은 아홉 살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로 들어옵니다.
낯선 교실에서 아이들은 처음 보는 선생님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칠판 가득 쓰인 안내 문구를 눈으로만 따라갑니다.
이름표가 붙은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 있습니다.
아마 선생님도 그랬겠지요. 저도 아이들이 낯설었습니다.
9시가 되기 전, 어느새 자리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런 내 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꽁꽁 묶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제 마음이 조금씩 새어 나왔나 봅니다.
그 낯섦이,
내 표정에서,
내 말투에서,
내 행동에서
그대로 묻어났나 봅니다.
오늘 저희 반은 아홉 살 아이들의 반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조용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친구와 바닥에 앉아서 함께 놀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접었습니다.
아홉 살 아이들의 이런 적막감이 무거웠습니다. 이리저리 몸을 비비 꼬며 조용히 4교시를 버텨내는 아이들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마 아주 작은 농담을 던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작은 한 마디였겠지요. 그냥 툭 던진 그 한마디가 살얼음 같은 분위기에 작게 금을 냈습니다. 아이들 입에서 아주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 틈을 타고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최고예요."
"선생님, 너무 예뻐요."
"선생님, 사랑해요."
한 아이가 그 고요함을 뚫고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저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아이의 얼굴 위로 작년 지원이의 얼굴이 그대로 겹쳐졌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 사랑해요." 외치던 열세 살 내 아이의 얼굴로 순간 바뀌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홉 살이 말을 건넸는데, 저는 열세 살을 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제 옆에는 열세 살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급식실을 가기 위해 두 줄로 선 아이들 앞에 태린이가 없었습니다.
줄 제일 마지막에서 "선생님, 추우시면 제 옷 입으실래요?" 묻던 희재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제 옆에서 밥 먹으시면 안 돼요?" 매일 졸라대던 혜린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아이들이 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긴 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자리를 뜨고 싶었습니다.
만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아서겠지요.
20년째 저희 반을 마무리해오던 그 인사,
"차조심, 길조심,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제 더 이상 태린이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이렇게 정리도 못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방과 후 시간이 남아 제 곁을 지켰습니다.
그때 선생님 모니터 아래 조그맣게 있는 맹구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어, 맹구다."
"맞아. 작년 6학년 오빠가 선생님한테 그려준 거야."
"오빠가요?"
아마 남학생이 그려준 그림이 신기했나 봅니다.
"그러면 이제는 중학생이겠네요."
"맞아. 중학교 1학년이야."
아이는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 조그마한 손으로 손가락을 접고 있습니다. 결국 원하던 답을 못 찾았는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보입니다. 아마 아직은 아이에게 나이 계산이 어려웠나 봅니다. 아이는 결국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을 읽습니다.
저는 오늘 2학년 교실에 서 있었지만, 사실 마음은 아직 졸업식을 지나지 못했나 봅니다.
아홉 살이 말을 걸었지만, 저는 여전히 열세 살의 그림자 속에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