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 돌아오니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겠다고 했던 그 잡지였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는데, 잡지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활자로 찍힌 내 글을 직접 보면 가슴이 쿵쾅거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제 생각이 낯선 누군가에게 비치는 기분이었습니다. 오히려 민망했습니다.
책상 위에 올려둔 그 책을 한동안 펼쳐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목차 한 귀퉁이에 실린 제 이름 석자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책상 뒤 창문으로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그제야 제 손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원고를 보내기 전까지 수백 번은 읽었던 글이었습니다. 컴퓨터 화면 속 익숙했던 그 문장들이 거칠거칠한 종이 위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 정말 내 글이 세상에 나왔구나.'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왜 울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봤습니다. 처음으로 제 이름이 찍힌 글이 나왔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원래 책을 좋아했습니다. 많이 읽을 때는 1년에 백 권 가까이 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작년은 조금 이상한 한 해였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펜을 들게 되었으니까요.
2025년, 저는 아주 특별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특별했다기보다 그때의 제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2024년, 저는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가웠던 날이었습니다. 오랜 투병 끝이었기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아버지 곁에서 지켰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에도,
'사랑해요'
저는 그 말을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작년, 학기 초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 쌀쌀한 봄기운이 교실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희 반 아이 중 한 명이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평소였다면 있을 수 없던 일이었겠지요. 수업 시간에 방해되는 말과 행동은 바로 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멈칫했습니다.
제가 쉽게 하지 못했던 말을 그 아이는 너무 쉽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막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거리낌 없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하지 못했던 그 말과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았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셨다면 좋아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딸이 조금씩 마음을 여는 모습이었으니까요.
작년 저는 학교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수업하는 순간도 좋았고, 아이들과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여름의 뜨거움이 한창일 즈음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 같다고. 이 마음을 다시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웃음과 기쁨, 때로는 속상함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며 차곡차곡 글로 남기다 보니 저에게 주어진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이별도 힘들었는데, 한 해를 이렇게 보낸 아이들과의 이별은 또 다른 종류의 슬픔이었습니다.
작년 12월 즈음, 아이들에게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습니다.
"너희를 너무 좋아해서 헤어지는 게 참 힘들다. 이렇게 좋아하지 말 걸 그랬어."
제 말에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아이의 말이 정답이었습니다. 저는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행복한 일 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공백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졸업식을 끝으로 저는 한동안 텅 빈 상태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겪은 이 시간을 책으로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작년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처음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쩌면 제 1년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중 한 교육 잡지에서 원고 청탁이 왔습니다. 책 한 권은 아니었지만 열 쪽짜리 이야기로 제 글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제 그 잡지를 펼쳤을 때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지난 1년의 시간이 정말 존재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 잡지가 조용히 증명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기억 속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실제로 지나온 시간이 그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