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첫 번째 수학 시간입니다. 손때 묻지 않은 새하얀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네임펜을 들고 삐뚤삐뚤 반, 번호, 이름을 써 내려갑니다. 이 책이 조금은 지쳐 보일 때쯤이면 아이들도 한 뼘은 더 자라있겠지요.
수학 첫 단원은 '세 자리 수'입니다. 곧장 수업에 들어가려 하는데 아직은 편안함보다 긴장이 먼저 감도는 교실입니다. 첫 시간은 책 속 숫자 이야기 대신 수놀이로 시작합니다. 1학년 때 배운 100까지의 수를 이용합니다. 한 명씩 앉은 순서대로 1부터 100까지 말해 보는 게임입니다.
다 함께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춥니다.
무릎, 손, 오른쪽, 왼쪽
무릎, 손, 오른쪽, 왼쪽
무릎, 손, 오른쪽, 왼쪽
처음에는 박자가 어색했던 아이들도 "아!" 소리를 내며 곧잘 따라 합니다. 분위기가 익숙해지자 박자에 숫자를 얹어 봅니다.
무릎, 손, 1, 왼쪽
무릎, 손, 2, 왼쪽
무릎, 손, 3, 왼쪽
"쉽네!"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릴 때까지 연습을 이어갑니다. 숫자가 50까지 쭉쭉 올라갑니다.
아이들이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목표는 숫자 100 완성입니다.
부담 없이 연습하던 아이들의 눈에 긴장감이 어립니다.
누군가는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릅니다.
누군가는 교과서에 쓰인 1부터 100까지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숫자가 1부터 10까지 쉽게 올라갑니다.
20까지도 쭉쭉 올라갑니다.
숫자가 교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짝, 짝, 24, 짝
짝, 짝, 26, 짝
"안돼!"
교실 여기저기 안타까운 탄성이 터집니다. 26을 외친 아이는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둘러봅니다. 안타까움과 원망이 섞인 눈길에 아이의 표정이 굳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얘들아, 우리 이럴 때 긴장하지 말라고 더 격려해 줘야지.
다 같이 박수 한 번 칠까?"
아홉 살 아이들은 선생님 말에 곧장 표정을 바꿉니다.
"할 수 있어!" 하는 말과 박수로 교실 분위기를 달랩니다.
1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짝, 짝, 34, 짝
짝, 짝, 36, 짝
"아!"
아까보다 더 큰 탄성이 교실을 울립니다. 또 그 아이였습니다.
4 다음이 5라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걸까요.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습니다.
아이 등에 흐르는 식은땀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괜찮아, 우리 친구 도와줄까?
얘들아, 34 다음은 뭘까? 같이 대답해 보자."
"35요!"
자꾸 5에서 틀리던 아이가 답답했는지, 개미만 하던 목소리가 어느덧 코끼리만 해집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한 아이가 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립니다.
"네 이름의 5잖아.
네 이름의 5!
오를 꼭 기억해."
무슨 말일까요.
아, 이 아이의 성은 '오'였습니다.
아홉 살의 격려에 선생님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입술 끝으로 살짝 눌러봅니다.
'오'를 기억한 아이는 더 이상 틀리지 않았습니다.
시간 안에 아이들은 100을 만났습니다.
숫자를 다 세고 난 뒤에도 아이의 얼굴에는 한동안 웃음이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