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사를 풀고 싶어요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7월 교실 창문으로 여름 기운을 가득 담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제는 선생님만큼이나 커버린 아이들이 교실 앞, 뒤로 둘러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옹기종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에어컨을 작동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 밥을 먹고 온 아이들이 칠판 아래 모여 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려봅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공기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이들 틈으로 몸을 구겨앉아 칠판 아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아이가 보입니다. 혜린이가 드라이버를 들고 다른 친구들과 제법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드라이버라니!

한 손에 드라이버를 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비현실적인 아이의 모습에 생각이 멈춰버립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학생이 다쳤을 때 어떤 설득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지난 20년간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학생의 몸에 난 조그만 생채기는 교사의 책임과 자질을 운운할 정도로 확대되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저는 교실에서 예측가능한 위험 상황은 절대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칼을 사용하는 만들기는 일절 하지 않고, 가위질도 자기 자리에 앉아 혼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이해와 용서가 사라져 가는 학교 분위기에 저도 함께 편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저에게 드라이버와 송곳이라니. 20년간 교실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던 물건입니다. 당장 중단시켜야 하는데 아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혜린아, 지금 뭐 하고 있어?


-칠판 밑에 붙어있는 이 분필통 좀 떼어 보려고요. 벽에 기대앉아 있는 친구들이 분필통에 맨날 머리를 박아서요. 유빈이는 3번 넘게 박았을 걸요?



아이는 드라이버로 4개의 나사 중 세 번째 나사를 열심히 돌려대며 선생님에게 설명합니다.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말문이 막힌 저는 혜린이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봅니다. 세 번째 나사가 풀리지 않는다며 목을 꺾어 칠판 아래를 골똘히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사뭇 진지합니다. 열세 살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고자 집에서 챙겨 온 연장을 들고 낑낑거립니다.


이 모습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오늘도 원칙 하나를 지워야 하나 봅니다. 제지하는 대신 아이가 다치지 않게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으로 슬며시 원칙을 바꿔봅니다. 나사를 헛돈 드라이버가 미끄러집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선생님 마음도 모른 채 아이는 계속 시도합니다. 네 개의 나사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나사가 풀리지 않습니다. 선생님 옆에 함께 있던 남자아이도 드라이버를 건네받아 풀어보려 하지만, 단단히 박힌 나사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한 번 해 볼게." 아이에게 드라이버를 건네받아 저도 아이들의 세계에 동참합니다.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이 너도나도 한 번씩 시도해 봅니다. 모여든 아이들이 함께 고민을 나눕니다.



-전기톱을 빌려 잘라볼까?


-아냐. 전기톱은 우리가 빌릴 수가 없잖아. 칠판이랑 분필통 사이 틈에 자를 넣어 세게 눌러보자.


-야, 그럼 자가 부러지겠지.


-그럼 통을 아예 잘게 부수면 되지 않을까?


-체육 선생님 힘 엄청 세. 우리 체육 선생님한테 풀어달라고 해보자.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마구 던져봅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황당한 이야기부터 제법 그럴듯한 생각까지. 귓가에 맴돈 아이들의 이야기에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칠판 아래 아이들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드라이버를 들고 대화에 동참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참 어처구니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행복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정해진 점심시간이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제자리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혜린이는 자기 자기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행정실에 교실 상황을 간략히 남기고 칠판 아래 분필통 분리를 요청합니다. 영어 시간, 행정실에서 전동 드라이버로 분필통을 칠판에서 제거해 줍니다. 영어 선생님이 교실을 떠난 뒤, 교실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러댑니다.



-선생님! 영어 시간에 어떤 아저씨가 오셔서 분필통을 떼 주셨어요!


-전동 드라이버로 금방 떼 버렸어요!


-이제 저희 머리 안 박을 거예요.



혜린이가 뿌듯한 얼굴로 말갛게 웃음 짓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아이의 모습에 결국 저는 원칙을 조금씩 바꾸어 나갑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잃는 것이 아쉬워 눈앞에 있는 것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사랑스러운 마음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저를 둘러싼 아이들이 쏟아내는 따스한 마음과 위로를 건네는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