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6월도 끝자락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람에도 여름의 열기가 더해집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뜨거운 여름 바람으로 바뀌는 동안, 겁쟁이 선생님의 마음에도 아이들의 따스함이 녹아내립니다.
4월 언제부터인가 저희 반 아이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누가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학기 초, 수업 시간 누군가 뜬금없이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쳤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저라면 불필요한 말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를 단호히 제지하고 지도했겠지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자신을 알아가는 열세 살 아이들은 때론 순수하게, 때론 잔인하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데 아직은 조금 서투르기에, 아이들의 솔직한 말과 행동은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지요. 이런 감정 소비가 싫어 저는 항상 아이들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번에는 누군가 시작한 사랑고백을 이용해 보려 합니다. 제가 항상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아이가 농담 삼아 외친 말도 교실을 떠돌아 결국 다른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겠지요. 저는 원칙을 바꾸어 보려 합니다. 제지하는 대신 "선생님도 사랑해."라도 답해줍니다. 수학 원리를 설명하듯 무미건조하게 건네어준 대답이었지만, 아이는 마치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양 함박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그 아이를 필두로 너도나도 선생님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누군가는 알림장 마지막 번호에 '선생님 사랑하기'를 또박또박 써 내려갑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다 간주 부분에 "선생님 사랑해요"를 외쳐대며 손 하트를 날려줍니다.
누군가는 급식실에서 눈이 마주치면 밥을 먹다 말고 눈웃음과 손 하트를 보내줍니다.
누군가는 시험지 한 귀퉁이에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매번 적어 둡니다.
한 아이가 시작한 사랑 고백은 저희 반의 유행어가 되어 다양한 방법으로 매일 이어집니다. 농담으로 시작했을지라도 계속 듣다 보면 농담은 진실이 되고 진실은 마음에 녹아들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시작된 예외사항이었는데, 정말 사랑고백이 들불처럼 번져갑니다.
그러던 6월 어느 날, '선생님 사랑해요'를 서로 경쟁하듯 외쳐대던 두 아이가 동시에 결석을 했습니다. 매일 들려오던 사랑고백이 뚝 끊겨버립니다. 자신 있게 먼저 외쳐대던 두 아이의 소리가 없으니, 다른 아이들도 그날은 말없이 수업에만 집중합니다. 지난 4개월 간 농담으로 외쳐대던 소리임을 알고 있었지만 텅 비어 버린 사랑고백에 괜스레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교실 분위기를 위해 아이들의 사랑고백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고백에 마음이 녹아든 건 어쩌면 저였나 봅니다. 농담 섞인 별다른 의미 없는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고백에 내심 마음이 설레었나 봅니다.
이제는 정말 인정해야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아이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