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학기가 점점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3월 4일부터 시작된 하루하루가 모여 이제는 서로가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좁혀진 거리만큼 마음속 생각의 조각들을 저에게 수줍게 꺼내어 보입니다. 언젠가 이 조각이 흉기가 되어 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저도 용기를 내어 봅니다. 아이들이 준 따스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고 싶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제 주위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점심시간, 밥을 먹고 서둘러 자리를 뜨던 우리 반 아이들 중 몇몇이 저화 함께 밥 먹는 속도를 맞춰가기 시작합니다. 6학년은 뒤이은 1학년 급식을 위해 서둘러 식당의 자리를 비워줘야 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급식실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다 고개를 들어보면 항상 한, 두 명의 아이만 남아있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아있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선생님, 마라탕 너무 매운데 맛있어요. 저는 매운 게 좋아요.
-선생님, 저기 뒤에 앉아있는 1학년 여자 아이가 제 동생이에요. 요즘 정말 말을 안 들어서 너무 얄미워요.
-선생님, 오늘 선생님 말씀대로 아침 먹고 왔어요. 그런데 전 아침을 먹으면 속이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교실에서는 알 수 없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여전히 어려울 법한 선생님이지만 재잘재잘 잘도 떠들어댑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도, 저도 밥 먹는 속도가 늦어집니다.
저 멀리 앉은 지원이가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눈빛으로 대신합니다. 정해진 식당 자리를 옮길 수 없던 지원이는 언제부터인가 저와 밥 먹는 속도를 맞춰갑니다. 식당에서 할 수 없는 대화 대신 식당에서 교실로 돌아가는 짧은 시간의 대화를 선택합니다. 친구들이 다 알아챌 정도로 지원이는 저와 같은 속도로 밥을 먹고 급식판을 정리합니다. 다 먹었으면 교실로 올라가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지원이는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있다며 씩 웃으며 너스레를 떨어댑니다.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 지원이와 나란히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이 모습이 부러웠던지, 아니면 재미있어 보였던지 지원이에게 동참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밥을 먹고 식당을 나서면 항상 식당 문 앞에서 네댓 명의 아이들이 저를 기다립니다. 식당에서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했던 걸 보상이라도 받듯, 저를 둘러싼 아이들은 식당 밖으로 나와 서로 신나게 떠들어댑니다. 항상 지원이가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을 알기에 다른 아이가 물어봅니다.
-지원아, 너도 2학기 때 부회장 한 번 해봐. 그러면 계속 선생님 옆에서 밥 먹을 수 있어.
지원이는 골똘히 생각한 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댑니다.
-아니야, 그럼 나 선생님하고 더 멀어질 것 같아.
지원아, 오늘 교과서 몇 쪽인가요?
지원아, 오늘 알림장 4번 내용은 뭐였나요?
지원아, 어제 숙제 중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 일 이야기 해보렴.
지원아, 어제 국어시간에 배운 내용 중 기억나는 것 아는 대로 설명해 보세요.
지원이는 선생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며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진저리 칩니다.
담임의 입장에서 저는 항상 학급임원은 다른 친구들에게 봉사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한 자리이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더 양보하고, 더 부담을 느끼게 만들어주지요. 그래서 저희 반 학급임원은 해야 할 일도 많고 질문도 참 많이 받습니다. 한 학기 동안 이 모습을 본 지원이가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전 선생님과 더 멀어지고 싶지 않아요.
배시시 웃으며 지원이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섭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은 지원이 말에 맞장구치며 큰 소리로 깔깔 웃어댑니다.
항상 먼저 올라가라고 해도 아이들은 더 이상 제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발길을 늦추며 선생님과 나란히 발걸음을 맞춰갑니다. 내 주위를 둘러싼 우리 아이들의 다정함이 6월 초여름 햇살보다 더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더는 피할 곳 없는 자리에서 말랑해진 마음으로 저도 아이들과 함께 웃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