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놀이를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교사가 된 후 해마다 공기대회를 개최합니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잡아두기 위해 시작한 행사이지만,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지난 20년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3월,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공기놀이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대결이 아닌 자신만의 공기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집중합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한 알 잡기 어려운 아이부터 80살 넘게 점수를 기록하는 아이까지 실력이 천차만별입니다. 풀이 죽어 시무룩한 아이들을 본 선생님은 남과 비교하지 말고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가며 꾸준히 도전하라고 격려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쉬는 시간마다 연습을 이어갑니다.
4월, 교실에도 따스한 봄기운이 찾아오기 시작할 즈음 기록경기를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토너먼트를 진행합니다. 26명의 토너먼트 대진을 칠판에 적어봅니다. 제비 뽑기로 만들어진 대진표에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음 짓습니다. 압도적인 공기 기록을 가진 진영이와 1차전에 맞붙게 된 아이가 당황한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봅니다.
종이 울리고 1차전이 시작됩니다. 예상했던 대로 최고의 기록을 가진 진영이가 상대를 압도합니다. 실력에 압도당한 상대 아이는 화려한 진영이의 손놀림에 경기 중에도 당황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1차전이 끝나고 아이는 멍한 얼굴로 패배를 받아들입니다.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라는 말로 토닥여줍니다.
5월, 두 번째 토너먼트 연습 경기를 개최합니다. 제비 뽑기로 다시 대진표를 만들어 칠판에 적어나갑니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잘하는 아이와 나중에 만나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가장 궁금해하던 진영이의 대진 상대가 불려집니다.
누굴까? 이미 이름이 불린 아이도, 아직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도 귀를 쫑긋 세웁니다.
-13번, 이태린
이름을 부르자마자 아이들이 일제히 태린이를 쳐다봅니다. 아이는 당황하며 "선생님, 저 4월에도 진영이랑 같이 했어요."라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제비 뽑기 막대를 원망스레 쳐다봅니다. 항상 불만 없이 묵묵히 자기 일만 하던 아이가 반복된 상황에 당황하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너는 진영이와 인연이라는 말로 아이를 달래 줍니다.
종이 울리고 다시 1차전이 시작됩니다. 예상대로 진영이는 차례차례 상대를 압도해 가며 5월에도 칠판 한 귀퉁이 '공기왕'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립니다. 아이들은 이제 으레껏 1학기 공기대회의 우승자로 진영이를 점치고 있습니다. 학기별로 한 번씩 이루어지는 정식 대회에서 3등 안에 들기 위해 진영이를 가장 늦게 만나야 한다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립니다.
6월, 세 번째 토너먼트 연습 경기를 앞두고 쉬는 시간마다 삼삼오오 모여 공기를 합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바쁘게 손을 움직입니다. 그때 제 옆자리에서 연습 삼매경에 빠진 태린이가 눈에 띕니다. 커다란 손으로 자기 손톱 만한 공깃돌을 이리저리 던지며 주고받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난 4월, 5월 연습 경기에서 1차전에 패하고 넋을 놓은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참고 살며시 물어봅니다.
-태린아, 이번에도 진영이 만나면 어떻게 할래?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궁금합니다. 아이는 공기놀이에 집중하며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짧게 대답합니다.
-이겨야지요.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남긴 한 마디가 '쿵'하고 마음에 울려 퍼집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지레 겁먹고 도망칠 생각만 하는 겁쟁이 선생님 생각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부딪히고 상처받는 게 싫어 아예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 왔습니다. 이런 저에게 '이겨야지요'라는 단호한 한 마디가 새로운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저도 아이처럼 용기를 내어보아야겠지요. 아이들이 나에게 준 작은 마음을 밀어내지 말고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 봐도 괜찮겠지요?
-너 그러다 또 상처받으면 어떻게 할래?
새로운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겁쟁이가 물어봅니다. 이번에는 저도 고민 없이 짧게 대답합니다.
-해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