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선생님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저는 5월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쭉 이어진 특별한 날들은 언제나 부담이지요. 특히 매해 돌아오는 스승의 날은 항상 어렵습니다. 선생님으로 주는 것은 익숙하지만, 받는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색하고 쑥스럽습니다. 김영란법을 필두로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여기저기 선생님에 대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지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참 불편합니다.


이런 불편함은 아이들에게 받는 편지 한 장 조차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께 편지 쓰는 활동 대신, 아이들에게 학교에 숨어있는 스승을 찾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게 합니다. 급식 아주머니, 청소 여사님, 보건 선생님, 배움터 지킴이 등 내 주변 어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전해드리는 것으로 스승의 날을 대신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매해 그래왔던 것처럼 전날 쓴 편지를 해당되는 분들께 전달합니다. 직접 쓴 편지를 배달하고 온 아이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합니다. 자랑스러움이 묻어난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스승의 날은 올해도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술렁거림이 느껴집니다. 평상시와 다른 기운이 교실을 가득 채웁니다. 몇몇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열세 살 아이들의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오만가지 나쁜 일들이 선생님 머릿속을 헤집어놓습니다. '누가 싸웠나?', '모여서 친구 한 명을 욕하고 있나?', '누군가 따돌릴 계획을 짜고 있나?' 쿵쾅거리는 가슴을 잠재우며 살그머니 눈치채지 못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봅니다.


옹기종이 모여 있는 아이들 머리 틈 사이로 분홍색 A4용지가 보입니다. 종이 위 절반쯤 색칠된 '사', '랑'이라는 글자가 눈에 띕니다. 선생님 그림자에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재빠르게 종이를 뒤집고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희재가 오늘 생일이니깐 우리 축하해 주자.", "선생님 생일 축하해 줘도 되는 거지요?" 아이들은 서툰 거짓말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감추어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툴게 거짓말하는 아이들 모습에 머릿속이 잠시 하얘집니다. 선생님을 위해 비밀스럽게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저는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모른 척 자리로 돌아갑니다.


점심시간입니다. 평상시에도 밥을 빨리 먹는 우리 아이들이 오늘은 더 빨리 자리를 뜹니다. 순식간에 모든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밥을 절반쯤 먹었을 즈음, 선생님을 데리고 오는 임무를 맡은 두 아이만 제 옆에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맙지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결국 무뚝뚝한 말투로 어색한 속마음을 내뱉습니다.



-선생님이 오늘 뭘 해줄까?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 정말 몰래 준비했는데.


-사실 선생님은 이런 거 너무 쑥스럽고 어색한데, 나 오늘 교실에 안 들어가야겠다.



서투른 비밀 작전을 들켜버린 아이의 얼굴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어립니다.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두 아이를 더 난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선생님,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부끄러우면 자신감 포즈를 취해보세요. 선생님도 할 수 있어요.



평상시 별 말이 없던 다른 아이 하나가 배시시 웃으며 어찌할지 모르는 선생님을 설득합니다.


제가 항상 저희 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항상 도전해 보라고. 자신이 없을 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당당하게 서서 '할 수 있다'라고 되뇌어 보라고.


제가 아이들에게 전했던 이야기가 아이의 입을 통해 제 귀로 다시 들려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주기만 했던 저에게 아이들이 자꾸만 뭔가를 되돌려줍니다. 아이 입을 통해 다시 돌아온 저의 말이 제 귓가를 맴돕니다.


아이의 말처럼, 저의 말처럼 저는 어색함을 뒤로 감추고 부담감을 떨쳐보려 합니다. 천천히 두 아이와 함께 교실로 발을 내딛습니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26명의 아이들이 종이꽃가루를 뿌리며 외쳐댑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21년 교사 생활 처음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의 마음에 저는 또 한 발 내딛습니다. 내 품에 들어오기 시작한 아이들의 마음이 더 커져버릴까 슬그머니 걱정이 피어오릅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현재의 기쁨을 밀어내고 싶지 않아 집니다. 아이가 나에게 그대로 되돌려준 나의 말처럼 선생님도, 나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저는 또 한 걸음 나아가는 걸 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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