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남자아이 vs 여자아이

11월 둘째 주, 교실에 다툼이 많아진 어느 날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한때 서점가를 사로잡은 이 책을 기억하시나요? 남자와 여자가 대립각을 세우며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재미있게 풀어낸 책으로 기억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고 하지요.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같은 일을 풀어가는 방식에도 남자와 여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6학년쯤 되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가 확연해지기에 선생님의 지도법도 달라집니다.


남자아이들은 힘의 논리에 지배됩니다. 그게 힘이던 카리스마던 선생님이 너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본인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절대 남자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남자아이들을 지도할 때에는 절대 군더더기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명확하게 선을 그어줍니다. '무엇을'에 초점을 맞추고 짧고 굵게 지도합니다.


여자아이들은 감정의 선이 복잡하고 섬세해집니다. 선생님은 사건 뒤에 숨어있는 감정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사건 뒤에 숨어있는 여자아이들 사이의 복잡 미묘한 실타래를 한가닥씩 풀어나가야 합니다. 선이 꼬이지 않도록 모든 이야기를 수집해 결론을 내립니다. '왜'에 초점을 맞추고 가늘고 길게 지도합니다. 물론 마지막은 '무엇을'에 초점을 맞추어 결론을 내리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21년 차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아이들 문제가 해결하기 더 까다로운 경우가 많은 편이지요.



올해 저희 반 아이들은 순한 편입니다. 6학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일으키지만 그 수위와 강도가 기본값 보다 한참 아래입니다. 물론 이전 학년부터 사건사고를 꼬리표처럼 달고 온 눈에 띄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순한 편이라 꼬리표를 달고 온 아이도 그 기세를 크게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월이 되니, 이런 저희 반에도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2학기는 친해진 만큼 다툼도 늘어납니다. 장난이라는 말로 서로의 몸을 툭툭 치거나 때리고, 농담이라는 말로 거친 말과 험한 말을 서슴없이 뱉어내기 시작합니다.


체육시간, 여자아이들 사이에 숨어있던 감정의 골이 드러났습니다. 3주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제때 매듭짓지 못한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말 한마디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을 풀어내기 위해 관련된 여자아이 모두를 개별상담합니다. 총 7명입니다. 저희 반 여자아이들 13명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한 명씩 따로 교실 밖으로 불러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험담에 참여하지는 않았는지, 선생님이 모르는 또 다른 뒷이야기가 있는지 각자의 입장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선생님 몸은 하나입니다. 이런 일이 한번 발생하면 교실은 뒷전이 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과 후 마음대로 남길 수도 없습니다. 수업 중 따로 불러 지도를 하면 수업권을 침해했다고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쪼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풀어내야 합니다.


아침 시간, 점심시간, 쉬는 시간 내내 교실을 비웠습니다. 회장 아이에게 교실을 맡겨두고 아이들 각자 상담을 시작합니다. 5교시 수업 중 오늘 담임교사가 수업하는 시간은 딱 한 시간입니다. 그 한 시간조차 독서시간으로 바꾸고 계속 상담을 진행합니다. 오늘 교실에 들어간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내내 복도와 상담실에서 7명의 아이를 수시로 불러가며 사건의 조각들을 아귀에 맞게 맞춰나갑니다.


교실은 엉망진창이 되어갑니다. 아침시간 한 명씩 불려 나가는 여자친구들의 모습에 교실이 술렁입니다.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왜?라고 상담을 다녀온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댑니다. 혹시 본인도 불려 나갈까 걱정하며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여자아이들만 불려 나가는 게 확인된 순간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 사건이라 결론을 내립니다. 남자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행복하게 웃습니다. 점심시간 알림장도 안 쓰고 본인들 노는 시간이 잔뜩 생기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이어진 상담을 끝으로 하교시간 즈음 결론을 내립니다. 당사자 중 한 명이 결석을 해 말끔하게 매듭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내용의 맥락은 모두 맞추었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교실 의자에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습니다. 5교시 마지막 영어선생님 수업이 끝난 후, 파김치가 되어 종례를 하기 위해 교실로 돌아갑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생님 얼굴을 오늘 처음 봤습니다. 오래간만에 본 남자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잔뜩 있습니다. 선생님의 하루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그 어떤 위로도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열세 살이니 '눈치'라는 게 조금 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그 짧은 3분의 청소시간에도 선생님 주위를 맴돌며 참새떼들처럼 지지배배 신나게 떠들어댑니다. 오늘의 사건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남자아이들은 신이 나 있습니다. 자유를 만끽한 남자아이들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선생님을 불러댑니다.



-선생님, 제가 퀴즈 하나 낼까요? 턴이 침대를 밀면 뭐가 될까요?


-배드민턴이래요! 너무 재밌죠?



오늘 하루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선생님은 기가 막혀 웃을 기력도 없이 힘없이 팔만 들어 저리 가라고 손짓합니다. 그때 또 다른 남자아이 하나가 엄청난 걸 발견한 듯 말을 이어갑니다.



-야! 우리 오늘 처음으로 알림장 안 썼어.


-아냐, 이거 두 번째야! 1학기 때도 한 번 안 쓴 적 있어.


-쉿! 조용히 해. 그러다가 내일 14번까지 알림장 쓴다고.



자기들끼리 낄낄 웃어대며 신이 난 남자아이들은 오늘 하루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선생님 없는 교실에서 신나게 놀아, 알림장도 안 써, 자기들은 혼 날 짓도 안 했어. 이보다 더 신난 하루가 없어 보입니다. 아무리 기본 생각 구조가 다르다지만 이건 내가 잘못 가르친 건가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친구들이 끊임없이 상담을 받고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건데, 남자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교실에 선생님이 모르는 두 개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분위기를 읽고 흐름을 타는 걸 좀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속된 말로 '기 빨린다'라는 표현이 정확해 보입니다. 남녀차별이 아닌 '남녀차이'를 인정하고 가르치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읽지 못하다니.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아무리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분위기에 따른 행동 요령을 가르쳐도 되겠지요?


에너지를 몽땅 소진한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해보아야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너희 좋을 대로 마음껏 즐기렴. 우리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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