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내게 찾아온 특별한 하루에 감사하길

2025년 11월 빼빼로데이를 하루 앞둔 어느 날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매일 맞이하는 평범한 오늘 하루에 감사합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선생님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잔잔한 하루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꽃을 피워내는 열세 살 아이들에게 평범한 하루는 어른이 되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새털처럼 많은 날 중 하나일 뿐이겠지요.


3월부터 아이들 마음을 설레게 한 학예회가 끝이 났습니다. 11월 학예회를 끝으로 6학년 대부분의 행사가 모두 막을 내리고 초등학교의 마지막 행사인 졸업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 특별한 날이 찾아왔습니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입니다.


10여 년 즈음부터 원칙적으로 학교에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었습니다. 학부모가 보내는 간식뿐만이 아니라, 학생이 반 친구 수만큼 준비한 사탕 한 알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기에 어떤 음식물도 반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물론 정규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끼리 과자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까지 막을 수 없겠지만, 학급 내에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준비한 그 어떤 선물도 금지되었습니다.


이제 이 사실은 너무 당연하기에 아이들에게 따로 말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선생님도 수업과 상관없는 이벤트성 행사를 극도로 싫어하기에 눈치 빠른 올해 아이들은 '빼빼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수업을 마칠 즈음, 몸만 열세 살인 우리 희재가 소리치며 선생님을 애타게 불러봅니다.



-선생님! 저 내일 빼빼로데이에 선생님하고 친구들에게 빼빼로 줘도 되지요?



11월 즈음이면 아이들은 선생님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해도 될 말과 행동을 구분해서 선생님을 슬쩍 찔러보는 일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희재의 질문에 귀가 번쩍 뜨입니다. 실상은 누구보다 먼저 물어보고 싶었던가 봅니다. 눈을 반짝이며 '혹시'하는 기대감에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아, 내일이 빼빼로데이였구나. 선생님은 내일이 11월 11일인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희재의 말에 귀가 번쩍 뜨입니다. 당연히 따로 준비할 친구가 없을 거라 생각해 미처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때다 싶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6학년이니 사회시간에 배운 내용을 써먹어볼까요?



-얘들아, 너희들 1학기에 기업과 개인의 경제관계에 대해 배웠지.

경제활동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목적은 뭘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는 거요.


-그러면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은 뭘까?


-이윤 추구요.



빼빼로를 언급하다 말고 갑작스레 들이미는 경제 이야기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합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왜 이런 말을 꺼내는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눈만 떼굴떼굴 굴리며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오늘 국어 시간에 광고의 정보 판단에 대해 배웠지. 왜 광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과장이나 허위 사실이 있을 수 있어서요.


-모두 잘 알고 있네. 너희들이 좋아하는 빼빼로데이도 마찬가지야.



아니,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 빼빼로를 주고받는 날인데, 선생님이 왜 사회와 국어 수업을 들먹이는지 아이들은 도통 감이 오지 않는 눈치입니다. 결국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빼빼로데이는 과자회사에서 상업적으로 만든 날 중 하나야.

기업의 최고 목적이 뭘까? 이윤 추구지. 바로 돈을 벌기 위해서야.

그러기 위해 11월 11일, 본인들의 과자 모양과 비슷한 날을 골라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광고를 기획한 거야.

광고에서 본 것처럼 마치 빼빼로를 무조건 줘야 할 것 같고, 받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느껴서는 안 돼.

광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지.


-왜 그런 기업의 상술에 너희들이 놀아나는 거야?



몇몇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집니다. 그저 11월 11일에 친구들과 과자를 함께 나눠먹고 싶었을 뿐인데, 비판적인 시각 없이 과자회사의 이윤 추구에 놀아난 사람이 된 냥 말하는 선생님의 설명이 충격이었나 봅니다.



-선생님, 전 빼빼로데이가 이윤 추구의 목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난 이제껏 부모님께 매일 드렸는데, 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


-난 앞으로 죽을 때까지 빼빼로 안 먹어야겠다.



아, 아이들이 또다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한 마디 하면 서너 마디를 보태는 우리 아이들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 꽂혀 수군거립니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말이 길어져도 설명을 보태봅니다.



-얘들아, 물론 빼빼로로 마음을 전하는 건 나쁜 게 아냐.

그런데 왜 꼭 11월 11일에만 마음을 전해야 하는 걸까?

오늘 11월 10일도 정말 특별한 하루야.

평생 이 시간은 되돌릴 수 없거든.


-난 너희들이 하루하루를 빼빼로데이처럼 특별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특별한 하루에 매일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너희는 빼빼로 보다 훨씬 멋진 걸 가지고 있잖아.

예쁘게 미소 짓는 표정,

마음을 녹이는 따스한 말,

기운 내라는 위로를 담은 토닥임.

빼빼로 대신, 너희들이 가진 것으로 옆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보렴.



아이들은 조용히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빼빼로데이를 방해하는 선생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봅니다.


물론 빼빼로로 내 숨긴 마음을 전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특별한 날,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 내게 찾아온 하루에 감사하며 주위에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따스한 시선과 부드러운 한 마디가 어떤 선물보다 값어치 있고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아이들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요.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상에 감사하고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너희들이 되길 2025년 11월 10일의 선생님이 바라봅니다.


23화.jpg 빼빼로 포장 속 마음을 담아, 임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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