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책갈피에 마음을 담다(2)

2025년 11월 중순, 교실에 다툼이 많아진 어느 날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가을의 빈자리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교실 문 틈 사이로 냉기를 담은 겨울바람이 새어 들어옵니다. 함께 한 시간이 쌓여갈수록 아이들 사이의 감정도 무르익어갑니다. 친해진 만큼 서로를 대하는 말과 행동이 편안해집니다.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몸으로 하는 장난이 늘고 말투가 거칠어집니다. 장난이라는 이름 하에 강도 높은 말이 대화 속을 오고 갑니다.


이번 주는 특히 속상했습니다. 믿었던 아이들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입니다. 물론 친해졌기에 나온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학급 임원이라는 아이들이 선봉장에서 서서 과한 장난을 치기 시작하니 특히 실망스럽습니다.


결국 일주일 새 연이어 터진 사건으로 선생님 인내심이 뚝 끊어져버립니다. 결국 교실 분위기가 얼어붙습니다. 서로 가까워졌기에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경계인 '예의'가 사라진 교실에서 수업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 번 무너진 경계는 결국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학교 폭력의 단초로 이어집니다.


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싸우라고. 학교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물론 그 경험이 즐거울 수도, 혹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진저리 치는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을 피하지 말고 본인이 버텨낼 수 있는 한계와 그 속에서 자신이 결정한 행동의 무게를 느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싸움을 권합니다.


다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예의'입니다. 3월 첫 만남부터 아이들에게 단 두 가지만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안전과 예의



이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나머지는 선생님이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일렀습니다. 싸워도 항상 '예의'를 지키라고. 상대가 나와 맞지 않으면 마음껏 싫어해도 괜찮습니다. 단, 그 마음을 표현할 때에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교실에 있는 모두와 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와 잘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싫다면 상대에게 거리를 두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꼭 해야 할 말만 나누면 됩니다.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정중한 방법을 익혀 예의 있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11월까지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해 왔건만, 한껏 친해진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습니다.


한 주 내내 이어진 다툼으로 차갑게 교실이 얼어붙었습니다. 수업 중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행동이 지극히 조심스러워집니다.



쉬는 시간, 살얼음 같은 정적을 깨고 지원이가 교탁으로 발을 옮깁니다. 조심스레 속삭이듯 선생님께 말을 건넵니다. 며칠 전, 빼빼로데이에 마음을 전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것이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이 말을 듣은 지원이가 우리 반 아이들의 특징을 담은 책갈피 26개를 직접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담아 친구의 이름을 연필로 꾹꾹 눌러쓰고 코팅을 했습니다.


아이가 건넨 책갈피를 보니 쨍하게 얼어붙은 선생님 마음 한 구석에 햇빛이 내리쬡니다. 친구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마음을 담아준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160여 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160일이라는 시간은 아이들 사이의 경계를 옅게 만들었습니다. 흐려진 경계가 '선'을 넘는 장난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이 옅어졌기에 우리는 상대를 내 마음에 품을 수 있었겠지요.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항상 동시에 존재한다고 아이들에게 누차 이야기해 왔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기고, 추운 겨울 뒤에는 따스한 봄이 찾아온다는 것을요.


제가 요즘 자꾸 발생하는 '선'을 넘는 장난에 너무 초점을 맞추었나 봅니다. 그 뒤에는 한껏 친해진 아이들이 서로를 각자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지원이의 책갈피가 넌지시 알려줍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또 다른 장난으로 선을 넘는 아이들이 또 등장하겠지요. 하지만 그 속에는 그만큼 서로를 생각하고 알게 된 친밀함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물론 아무리 친해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끝까지 반복하겠지만요.



25화.jpg 마음을 담은 우리 반 책갈피, 임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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