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 역할극 대본을 만들며
국어시간, 오늘은 모둠별로 뉴스를 만들어보는 활동입니다. 진행자와 기자의 역할을 나누고, 주제에 따라 기사를 작성한 후 직접 뉴스를 연출해야 합니다. 이제 6학년 생활이 한 달여 정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교과서 속 이야기가 아닌, 자신들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주제를 바꾸어 봅니다.
5학년 동생들에게 6학년 생활 알려주기
3월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6학년 12반의 문 앞에 섰던 그날을 떠올려봅니다. 대부분이 처음 보는 엄격한 선생님 모습에 멈칫거렸지요. 선생님도, 아이들도 그날의 풍경이 아스라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선생님, 저 그때 7번이나 인사 다시 했어요.
-전 제 앞에 다시 인사하는 친구가 있어서, 바르게 인사해 한 번에 통과했어요.
-선생님, 첫날 교실이 정말 너무 조용해서 저희 교가도 못 불렀잖아요.
돌이켜 생각하니 첫날 잔뜩 긴장한 자신들의 모습이 웃긴 지 자기들끼리 속삭이며 배시시 웃어 보입니다. 선생님은 추억에 잠겨버린 아이들을 현실로 데리고 옵니다. 긴장했던 첫날 너희들의 모습이 지금 5학년 아이들의 모습일 거라고. 그런 동생들에게 6학년의 생활을 알려주는 뉴스를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할 말이 많은데 막상 글로 쓰려니 고민이 많아집니다. 연필을 쥐고 생각에 잠겨듭니다.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힌트를 줘야겠습니다. 선생님은 서랍 한 구석 세월을 잔뜩 머금은 편지를 한 뭉치 꺼내듭니다. 과거 내 아이들에게 받은 선생님 소개서입니다.
2022년 5학년 2학기 학급 회장이었던 아이의 글입니다. 자기 할 일을 똑 부러지게 잘 해낸 친구였지요. 아이가 쓴 글 속에 제 삶이 엿보입니다. 아이의 글을 TV화면에 크게 띄어줍니다.
-선생님, 저 누나가 미래를 봤나 봐요.
1년 내내 촐랑거린 1학기 회장이자 2학기 부회장인 희재가 배시시 웃으며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아이들은 과거에서 온 다른 언니의 편지에 벌떼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때도 인사 제대로 안 하면 혼났나 봐.
-우와! 사회 쪽지시험이랑 세 줄 정리도 여전히 있었나 봐.
-막대신도 계속 보이네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흐려집니다. 아이들에게 예시로 보여주기 위해 꺼내든 편지 뭉치가 선생님의 시간을 과거로 돌려줍니다. 과거에서 온 편지를 읽는 순간 당시 내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펼쳐지고 입가에 미소가 스며듭니다. 내 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세월을 머금은 5년 치 편지더미가 저를 과거로 떠나보냅니다. 글이 보내준 타임머신입니다. 멍하니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아이들의 글귀를 바라보며 선생님은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눈치 빠른 한 아이가 작게 속삭입니다.
선생님 추억에 잠겼어
아이의 말에 선생님은 다시 2025년으로 돌아옵니다. 올해 내 아이들에게 참 많은 글쓰기를 시켰습니다. 시작은 따라 쓰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내려가게 했습니다. 이제 겨우 10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누군가는 벌써 다섯 번째 노트를 가져옵니다.
선생님이 그랬듯 본인들이 쓴 글귀가, 내가 남긴 흔적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역사가 되길 바라봅니다. 올해 우리 아이들이 쓴 이 많은 글이 사진 속 열세 살 모습 뒤에 감춰진 생각과 감정을 함께 잡아두는 기억의 사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꿈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지 때론 지치고 힘들 수 있는 내 앞날에 따스한 희망의 등불을 밝힐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올해 우리가 기록한 이 모든 순간의 기억들이 그렇게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되어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