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선생님, 더하기 못하면 원주율 못 풀어요

11월 넷째 주, 실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어느 날

요즘 수학시간 실수가 잦아졌습니다.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을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부끄러워집니다. 새로운 개념을 가르칠 때에는 수업 전 아이들 수준에 맞춰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해 아이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데 요즘 왜 이렇게 말이 꼬이는지요.


오늘은 원주율과 원주, 지름의 관계를 가르쳐야 합니다. 방정식과 이항의 개념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기라 미지수의 위치를 이용해 쉽게 풀어내 볼 예정입니다. 설명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선생님이 미지수의 위치가 헷갈립니다. 황당함을 넘어 당황한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횡설수설합니다. 보다 못한 아이 하나가 수학시험을 칠 때면 항상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선생님 말을 다시 되돌려줍니다.



선생님, 헷갈릴 땐 다 지우고 다시 해 보세요



아이의 말에 정신이 퍼뜩 돌아옵니다. 아이 말대로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설명해 줍니다. 매끄럽게 설명이 이어가지만, 횡설수설했던 선생님의 이전 설명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내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겠네요.


한 번 꼬인 말이 계속 머리에 잔상처럼 남아있습니다. 제가 가르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쉬는 시간에도 계속 되짚어 봅니다. 곧장 이어진 사회시간에도 여파가 따라붙습니다.


사회시간은 지난 수업과 이어집니다. 지난주 아이들은 겹치지 않게 흥미로운 나라를 하나씩 골라 각자 조사보고서를 정리했습니다. 오늘은 26개의 조사보고서를 보고 그중 일부를 배움공책에 각자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몇 나라를 정리할지가 가장 큰 화두입니다. 쉬는 시간 교섭을 위해 몇몇 아이들이 교탁으로 슬그머니 다가옵니다. 선생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속내를 감춘 채 운을 떼어봅니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 뭐해요?


-사회 수업하지.


-그러면 사회시간에 저희 몇 개씩 정리해야 해요?


-열 개. 그래도 친구들이 조사한 거 절반은 정리해 줘야지.



열 개라는 소리에 아이의 입이 떡 벌어집니다. 그럴 줄 알았지만 '혹시나'하는 기대를 품은 아이 얼굴에 실망감이 어립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합니다.



-에이, 선생님. 우리는 6학년 12반이잖아요.


-맞아요. 6학년의 6과 12반의 2를 따로 떼서 6 더하기 2를 하면 얼마일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양을 줄이고 싶은가 봅니다. 노력이 가상해 하나 정도는 줄여줘야겠습니다.


-6 더하기 2는 9지.


응? 선생님 대답에 내 앞에 있던 아이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마주 봅니다. 뭐가 이상한 지 선생님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합니다. 고개만 갸우뚱거리는 선생님의 반응에 아이들은 과장된 표정으로 "네?"라는 소리만 외쳐 됩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열 손가락을 펼쳐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갑니다. "선생님, 6 더하기 2는 8이에요." 아이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설명을 이어갑니다.


-선생님, 더하기는 하셔야지요.


응? 무슨 소리인가요? 선생님은 한참을 멍하게 아이들을 쳐다봅니다. 아! 제가 하나를 줄여준다는 거에 꽂혀 9라고 말했습니다. 엉뚱한 실수에 선생님도 실소가 터져 나옵니다. 오늘은 정말 하루 종일 엉망입니다. 수학시간부터 한번 꼬이기 시작한 머리가 계속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사회시간 종이 울립니다. 아이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선생님은 6 더하기 2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을 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 선생님도 칠판 앞에서 한참을 웃어 보입니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웃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며 선생님만 쳐다봅니다. 웃음을 참고 싶은데 한번 터져 나온 웃음은 멈추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때 쉬는 시간 측은한 눈길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6 더하기 2를 설명하던 아이가 내 웃음에 쐐기를 박아줍니다.



선생님, 더하기 못하면 원주율도 못 풀어요.



안쓰러운 표정으로 선생님을 가르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수학시간에 제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원주율을 계산하기 위해 먼저 소수의 나눗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수학은 나선형 학문이기에 이전 학년도 공부가 꼭 선행되어야 한다고. 눈치 빠른 아이가 귀신같이 선생님 말을 기억하고 상황에 맞춰 선생님께 그대로 돌려줍니다.


이 상황이 웃겨 눈물이 고일만큼 배를 잡고 웃어봅니다. 눈물을 닦으며 웃음을 참아보니 코 앞에 앉은 아이가 다른 말로 선생님을 달래줍니다.


-선생님, 이제 곧 12월이에요.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시니까 울지 마세요.


아, 정말 엉뚱한 소리에 오늘 하루 정신없이 웃어봅니다. 선생님이 웃음을 멈추지 못하니 아이들도 왁자지껄 웃음에 동참합니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유무를 토론하면서요.


웃음을 참지 못한 선생님 잘못이지요. 올해 아이들은 고학년답지 않게 저를 많이 따르고 닮아갔습니다. 좋은 점만 배웠으면 하는 마음은 욕심이겠지요. 이젠 선생님 실수도 고스란히 선생님 방법으로 돌려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로 신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묘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실수가 이젠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루하루 엉뚱해지는 아이들에게 농담 섞인 위로도 받아갑니다. 헤어짐을 앞두고 부쩍 자란 아이들의 모습이 참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하루는 실수도 농담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아이들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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