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15일 앞둔 어느 날
졸업식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6학년 12반이라는 이름 아래 한 자리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채 3주가 남지 않았습니다. 칠판 한 귀퉁이에는 날짜와 더불어 D-day가 함께 적혀있습니다. 누군가는 무덤덤하게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17일 남았어요", "15일 남았어요"라며 남은 숫자를 세어봅니다.
올해 제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기억'입니다. 2025년, 6학년, 열세 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따스한 웃음이 얼굴 가득 번질 수 있도록 행복한 시간의 기억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11월 말부터 마지막 프로젝트로 개인 문집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문집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주제를 정해 일주일에 2~3편씩 나만의 소중한 기억을 수집합니다. 올 한 해 내가 겪은 일들을 각자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 내 시간을 글로 잡아두고 있지요. 오늘의 주제입니다.
6학년 때 가장 행복한 순간
우리가 함께 지나온 1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6학년의 한 순간을 잡아내봅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다른이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일이라도, 내 가슴을 뛰고 설레게 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글을 쓰기 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나눠봅니다.
-저는 처음으로 소금에서 소리가 났을 때 진짜 좋았어요.
-마지막 '우리 반 베스트셀러'에서 제 책이 1등 했을 때 행복했어요.
-수학 단원평가 다 맞았을 때요.
-가끔 금요일 방과 후 끝나고 교실에 가면 선생님이 "주말 잘 보내"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순간이 좋았어요.
각자 자신만의 추억을 입 밖으로 내며 행복한 순간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떠오른 기억은 아이들에게 옅은 미소를 가져다줍니다. 빙그레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 행복이 번져갑니다.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의 통로로 들어섭니다. 속상하고 화가 났던 일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올 한 해 저는 아이들을 통해 행복하게 미소 지은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2008년 이후 다시는 담임선생님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제 마음에 아이들은 다정한 위로의 손길을 보내고 새살을 돋게 만들었습니다. 6학년 담임이라는 무게감과 불안함에 학기 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그 밤, 21년 차 겁쟁이 선생님은 지금 이 순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으로 선생님도 최고의 순간을 알려줍니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행복이었어
선생님이 꺼내보인 속마음에 아이들은 "에이! 2026년에도 그 말씀하실 거지요?"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습니다. 이제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였을까요? 선생님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한 진심이 혼잣말처럼 입 밖으로 새어 나와버립니다.
-이렇게 좋아하지 말 걸 그랬어.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다.
낮게 소리로 읊조린 혼잣말을 선생님 근처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들어버렸습니다. 평소 들어본 적 없는 선생님의 속마음을 엿들은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아이가 오히려 저를 위로해 줍니다.
-선생님, 저희 만나 행복하셨잖아요.
-맞아, 너희들 덕분에 선생님 올 한 해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 그래서 헤어지는 게 참 힘들다. 그냥 덜 행복하고 덜 힘든 게 좋지 않았을까?
21년 차 겁쟁이 선생님이 열세 살 아이들에게 마지막 투정을 부려봅니다. 지난 세월, 저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어 시작조차 하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때 아이 하나가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한 선생님을 현실로 돌려줍니다.
선생님, 그러면 매일매일이 불행하잖아요
아이가 던진 한 문장이 제 마음을 오래 붙들어 두었습니다. 덜 좋아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