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마음이 읽혀서 짠하네요'
메일 속 한 문장에, 애써 감춰왔던 감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흐르는지도 몰랐던 눈물 방울이 책상에 점점이 번져갔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로 22년 차 교사가 되었습니다. 22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아이들 앞에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이 직업의 무게가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곁을 내어주지 않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원칙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일컬었지만 실상은 상처받는 게 싫어 항상 한 걸음 뒤에서 관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2025년 이상한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은 선을 거침없이 넘나들던,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내어준 손과 마음에 저도 모르게 제 곁을 내어주었습니다. 교사로 생활하며 처음으로 경험해 본 일이었습니다. 시작은 '신기함'이었습니다. 그저 이상한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 이 일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결국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상한 아이들을 사랑했었다는 것을요.
2025년 12월 31일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에 앉아 텅 빈 아이들의 자리를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생각이 많았습니다. 교사로 생활해 온 지난 20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지킨 그 거리가 저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그러던 중, 제 이야기를 써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잡지에 짧게 실어보고 싶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고, 지난 1년을 세네 장의 짧은 글로 풀어보았습니다. 마지막 수정 작업 후 편집장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마음이 읽혀서 짠하네요'
이 말이 왜 이렇게 크게 다가왔을까요. 지난 20년간 제가 세운 원칙이 사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애씀이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줘서였을까요.
저는 항상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해는 없었습니다. 실수한 적은 있겠지만 그 또한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거리는 두었지만, 부끄럽게 산 적은 없었습니다. 정은 없었어도 책임은 다했습니다. 지난 20년간의 생활 방식은 무너져가는 교육현장에서 저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었습니다. 작년 아이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이 많이 흔들렸나 봅니다.
어쩌면 누군가 내 상황을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도 사실은 이해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나마 줄 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 위로로 다가왔나 봅니다.
선생님으로 열심히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낼 거라고.
그 말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건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