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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 주제 소개

프랑스 자유의사들의 노동중단 처방 조정에 관한 연구

by 신유경

저는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국가가 자유의사(médecins libéraux, 국가로부터 직접적인 보수를 받지 않는 의사)의 의료행위, 특히 노동중단(arrêt de travail) 처방을 통치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의 통치(government of conduct)란, 외적 강압에만 의존해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이끌어가도록 하되, 그 과정이 정당한 권위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되는 것을 지칭합니다. 그동안 신푸코주의자들은 심리학자, 의사, 사회복지사, 공장관리자 등에 의한 행위의 통치를 “국가의 후퇴”로 해석해 왔습니다(Miller & Rose, 2008). 반면 제 연구는 이 '행위의 통치'가 오히려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 개입 그 자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Dubuisson-Quellier, 2016). 제 연구의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 국가는 벤치마킹과 금전적 제재를 결합한 의료행위 조정 정책 도구(policy instrument) (Lascoumes & Le Galés, 2010)인 ‘Mise sous objectif (MSO)’를 통해 일반의들의 노동중단 처방 행위를 어떻게 통치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통치방식을 통해 아픈 개인을 노동시장에 어떻게 재진입시키는가?


프랑스 의사들, 특히 노동중단 발급 업무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일반의(médecin généraliste, 의과대학 교육과정 6년과 일반의학 레지던트 과정 3년을 거쳐 양성되는 의사)에게 이 업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노동중단 증명서 발급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로 환원되지 않으며, 일반의들은 이를 필수적인 치료 수단이자 하나의 의료행위, 즉 ‘처방(prescription)’으로 인식합니다. 전문의들은 이 노동중단 처방을 일반의에게 흔히 위임하지만, 일반의들은 대체로 이를 "더러운 일(dirty work)"로 간주하지 않습니다(Hughes, 1958). 물론 3일 이내의 짧은 노동중단 처방이나 각종 의료적 증명서(예컨대 동호회에서 체육활동이 가능함을 확인하는 문서) 발급은 ‘진정한 의료행위’에 투자해야 할 시간을 뺏는 업무로 여겨집니다. 반면 노동중단 처방은 일반의들의 고유한 업무 범위로 인정되는 경향을 보이며, 특히 사회적·심리적·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례일수록 일반의들은 전문가로서 자신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노동중단 처방이 별도의 금전적 보상을 수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의들은 이를 비의료인(프랑스에서는 간호사 포함)에게 위임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프랑스 사회보장(Sécurité sociale) 재정은 지속적인 적자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중에서도 질병보험(Assurance maladie)의 재정적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2024년 기준 질병보험 재정적자는 약 138억 유로(한화 약 20조 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적자 확대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상병수당 지출 증가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한 연구(Colinot & Pollack, 2024)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3년 사이 발생한 상병수당 지출 증가분 가운데 고령화, 최저임금 인상, 고용 증가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약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에 국가와 전국질병보험기금(Caisse nationale de l’assurance maladie, CNAM)은 해당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의료행위의 조정(régulation,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규제’와 구별하기 위해 ‘조정’으로 번역함)은 이러한 대책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한편 프랑스에서 국가는 의료행위에 개입할 때 상당한 법적 제약을 받습니다. 내적 정합성과 체계성을 갖춘 합리적인 법체계에서 개인을 처벌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진행하는 것과 같은 광범위한 삭감 방식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일차질병보험기금(Caisse primaire de l'assurance maladie, CPAM)이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감사(contrôle)를 보고 누군가는 한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진행하는 '심사'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활동은 제도 수준에서부터 전혀 다르게 정의됩니다. 한국의 심사 제도는 정확히 어떤 원칙에 따라, 어디까지의 한계를 두고 진행될 수 있는지 법적으로 구체화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심사제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더라도, 이 제도 자체가 "상위법, 특히 헌법적 가치를 어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입니다. 법을 어겼다고 여겨지는 개인을 처벌하고자 할 때 수많은 법적 쟁점들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민은 대부분 판례 수준에서 그칩니다. 그 결과, 한국의 심사 제도는 개별 의료행위의 적정성 판단 기준이 되는 요양급여기준들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경로를 택했습니다. 실제로 요양급여기준 관련 규칙들을 모아둔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과 심사지침>은 1,000 페이지가 넘습니다.


반면 프랑스에는 개별 의료행위에 관한 세세한 규칙들이 부재합니다. 이러한 규칙에 강제성을 부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을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구체적 의료행위에 대한 규칙은 대부분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존재합니다. 이처럼 프랑스에는 요양급여기준에 대응하는 규칙들이 없습니다. 대신 의료행위 감사에 관한 원칙들로 구성된 하나의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법제도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법제도의 특징은 비단 의료행위의 감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사회보장법전(Code de la Sécurité sociale)과 보건법전(Code de la santé publique)은 의료행위와 건강보험에 관한 규정을 폭넓고 체계적으로 담고 있어, 그 질적·양적 수준에서 한국의 의료법 및 국민건강보험법을 모두 압도합니다.


1990년대 프랑스 국가는 명문화된 의료행위 규칙을 근거로 의사들을 금전적으로 제재하는 제도(références médicales opposables, RMO)의 도입을 시도했으나, 의사직업단체의 강한 반발과 헌법재판소 판결 등으로 인해 이 정책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국가는 노동중단 처방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과기반지불(pay for performance) 제도를 제안했지만, 자유의사들은 이 제도가 직업윤리에 반하고 보건의 상품화를 조장한다며 저항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에 국가는 의사직업단체와 4-5년마다 체결되는 의료합의(convention médicale) 및 협상 구조를 우회해, 의회를 통한 입법 방식으로 의료행위를 조정하려는 전략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 결과 2006년 노동중단 처방 사전승인 제도(mise sous accord préalable, MSAP)가 도입되었습니다. MSAP는 질병보험기금 소속 자문의사(médecin-conseil)가 통계적으로 ‘과잉처방’을 한다고 지목된 의사의 노동중단 처방을 개별적으로 검토·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막대한 인적 자원 소요와 만성적인 자문의사 인력 부족이라는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효율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11년에는 Mise sous objectif (MSO)가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과잉처방’ 의사에게 노동중단 처방량 감축 목표(기존 대비 20~30% 감소)를 부여하고, 이를 기한 내 달성하지 못할 경우 (2025년 기준) 최대 7,850유로(약 1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2023-2024년 기준 MSO 적용 대상은 전체 의사의 약 1%에 불과하지만, MSO는 MSAP보다 효율적인 의료행위 조정 수단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와 질병보험기금은 이를 입법을 통해 전면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저는 프랑스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통해 노동중단 처방에 관여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해 왔습니다. 그리고 일반의뿐만 아니라 의사직업단체 임원, 의과대학 교수, 보건부, 일차질병보험기금(CPAM)의 관리자 및 자문의사 등 다양한 행위자들을 만났습니다. 일반의 학회 및 직업단체 전국회의도 관찰했으며, 공적 문서 및 의회 회의록 등을 분석함으로써 노동중단 처방 조정 제도의 도입 및 확대 과정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MSO는 자유의사, 특히 일반의 직업단체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제 연구가 이러한 제도 확대를 가능하게 한 제도적·인지적·관계적 조건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내년에는 MSO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도된 결과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특히 프랑스 상병수당 제도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CPAM을 대상으로 한 비교사례연구를 통해, 사회정책 연구와 일선관료제(street-level bureaucracy)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메조 수준(meso-level)의 정책 집행 과정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Brodkin & Marston, 2013).


제가 현재 소속된 연구소인 조직사회학센터(Centre de sociologie des organisations, CSO)는 프랑스 조직사회학의 대표적 학자인 미셸 크로지에(Michel Crozier)가 설립한 연구기관입니다. 이 연구소는 거시 수준과 미시 수준 사이, 즉 메조 수준(meso-level)에서 관찰되는 권력관계(relations de pouvoir)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아 왔습니다(Crozier & Friedberg, 1977). 제도와 아이디어가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Béland, 2016), 이 영향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려는 접근이 연구 전반을 관통합니다. 연구자들은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지닌 행위자들이 상호의존적이면서도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형성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집단적 행위(collective action)를 설명하고자 합니다(Bergeron & Castel, 2024).


프랑스 자유의사들의 노동중단 처방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왜 한국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지 물어보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에 간략히 답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를 분석할 때 서구 사회에서 발전시킨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이곳에서 배운 사회학 이론의 강점 및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법제도를 프랑스어로 읽고, 프랑스에서 개인들이 제도와 맺는 관계를 직접 관찰하면서, 이러한 이론의 적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조직사회학의 많은 연구는 제도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특히 공식적 규칙과 실제 행동 패턴 사이의 괴리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제 박사논문 역시 법학 논문이 아니라 사회학 논문인 만큼, 제도 자체의 정합성보다는 제도가 집행되는 과정에 주목합니다(논문의 일부는 제도 구축 과정도 함께 분석합니다). 즉, 법제도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 시행을 둘러싼 사회적·직업적 규범, 그리고 행위자들 간의 권력관계를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나아가 흔히 ‘신자유주의’로 통칭되는 변화가 단일하고 동질적인 흐름이 아니라, 이질적인 변화들의 집합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러한 이질적 변화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와 그 핵심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합리성이 지니는 한계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그 제도가 합리성―즉 내적 정합성과 체계성―을 일정 수준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저는 향후 한국의 보건제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 사회보장 및 보건제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프랑스 상병수당 제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덕분에, 한국의 법제도에는 합리성(rationality)이 부재하고, 한국 의사들 사이에는 직업적 규범(professional norm)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먼 미래에 한국 보건제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면, 베버의 관료통치(bureaucracy) 개념,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 그리고 크로지에의 권력관계(relations de pouvoir) 개념을 왜 한국의 맥락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지부터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연구 결과물을 내느라 바쁘지만, 나중에 한국에서도 박사논문 연구 관련 내용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프랑스 상병수당 제도나 조직사회학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yukyung.shin@sciencespo.fr로 언제든지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Bergeron, H., & Castel, P. (2024). L’Organocène: du changement dans les sociétés surorganisées. Presses de Sciences Po.

Brodkin, E. Z., & Marston, G. (2013). Work and the welfare state: Street-level organizations and workfare politics. Georgetown University Press.

Colinot, N., & Pollak, C. (2024). Arrêts maladie: Au-delà des effets de la crise sanitaire, une accélération depuis 2019. (No. 1321; Études et Résultats). https://www.drees.solidarites-sante.gouv.fr/publications-communique-de-presse/etudes-et-resultats/241211_ER_Arrets-Maladie

Crozier, M., & Friedberg, E. (1977). L’Acteur et le système. Éditions du Seuil.

Dubuisson-Quellier, S. (2016). Gouverner les conduites. Presses de Sciences Po.

Hughes, E. (1958). Men and their work. The Free Press.

Lascoumes, P., & Le Galès, P. (2010). Gouverner par les instruments. Presses de Sciences Po.

Miller, P., & Rose, N. (2008). Governing the present: Administering economic, social and personal life. Pol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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