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열심히 살고 싶다.

by 이윤경

수집과 사랑을 유사하게 보는 심리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미친 것과 같은 현상으로 수집을 설명하기도 한다. 둘 다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 발달심리학자 루스 포마넥은 1991년 167명의 수집가들에게 수집의 동기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 그냥 미친 거죠"

나는 어릴 때 몇 년 단위로 종류만 다르게 수집 같지도 않은 수집을 했었다. 매번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보물이었지만 남들이 볼 땐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는 물건들뿐이었다. 아무도 쳐다볼 마음이 없는데 근처도 못 가게 했고 어쩌다 건드린 흔적이라도 느껴지면 지랄발광(지금 생각해도 지랄발광 말고는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을 해서 엄마가 애원하곤 했었다.


" 제발 저 미친년 좀 건드리지 마! "


속옷 차림의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자가 모델처럼 서 있고 알록달록하게 예쁜 옷들과 그에 맞는 신발, 액세서리를 오려서 입히고 놀 수 있는 종이 인형이 시작이었다. 종이 인형은 발전해 손수 제작까지 해서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기도 한다. 선심에 노예가 된 아이들은 으레 나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파티에 갈 때 입힐 옷과 신발, 액세서리나 그 외 예쁜 옷들이 필요해서 경쟁적으로 그려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 크면서는 온갖 문구류가 서랍을 가득 채운다. 메모지, 스티커, 연필, 인형, 수첩 등 서랍이 안 닫힐 정도로 꽉 차게 많아도 욕심은 끝이 없었다. 특히 수첩은 쓰지도 않으면서 집착이 심해 쓸 수 있게 생긴 건 무조건 서랍 속으로 감춰놔야만 마음이 편했다. 스카우트도 아니면서 언니의 스카우트 수첩과 엄마의 금박 가계부까지 감췄다. 그래도 이 정도는 여학생들에게 흔한 모습이라 봐 줄만 하다. 가장 절정은 사춘기에 시작되었고 내 세상을 품기에는 서랍이 너무 작았다. 열쇠가 달려있는 게 옷장뿐이라 옷장으로 나는 보물 장소를 옮기게 된다. 잡지, 성냥갑, 옷과 액세서리 등 뭐든 몽땅 넣고 잠그고 다녔다. 서랍과 마찬가지로 옷장 열쇠도 제 기능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신발까지 넣고 꼭꼭 잠갔는데 건드렸다는 심증만 있어도 그날은 가족들 모두 내 고함과 발버둥과 등쌀에 피곤한 날을 보내야 했다. 저 미친년 또 시작이라며 피해 다녔지만 기필코 쫓아다니며 내 걸 왜 건드리냐고 소리소리를 질러서 부모님께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가장 미친년으로 인정받은 일은 벽과 방문, 창문을 도배한 일이다. 당시 일본 패션 잡지 논노를 정기구독했었는데 마음에 드는 옷 스타일을 오려 책상 앞에만 붙이던 것이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방 안 전체를 도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방 문에는 디자인이 독특하고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특이한 성냥갑들을 모아 붙였다. 상상을 해보라. 방 문을 열고 들어와 문을 닫으면 방문엔 성냥갑이 꽉 차 붙어있고 창문과 벽에는 패션잡지로 겹겹이 도배가 되어 있는 풍경을. 병적으로 방문도 닫고 다녔지만 어쩌다 열려있기라도 하면 우리 가족들은 슬쩍 알아서 닫았다. 미친년이 따로 없다면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우리 집 불문율이었고 그 불문율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가끔 경조사에서 친인척들을 만나면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웃으면서 말한다. 지금은 그렇게 착해졌다며!

그때를 생각하면 참 행복했구나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거침없이 욕구를 발산하고 그 미친 짓을 그대로 봐주던 가족들이 있어서 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 갖고 싶은 것이 간절했었던 걸까 우습지만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허섭쓰레기에 불과했던 내 보물들이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수집과 자아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물건에 애정을 쏟는 과정 자체가 건강한 정서적 충족이 될 뿐 아니라 그 사물에 부여하는 의미는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다 각자 나름의 고유한 관계를 갖는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같은 사람이지만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계는 변할 수밖에 없다. 같은 사물이지만 그때와 지금이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모든 물욕이 사라져 의욕까지 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또다시 한번만 더 미친년이 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그림에 미치고, 책 읽기에 미치고, 글쓰기에 미쳐서 살수만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제발 미쳐서 나를 보는 사람들 걱정을 듣고 싶다.


" 미쳤어! 그만해! ‘


살다 보면 꼭 의미가 한 가지로만 해석되거나 하나의 모습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것이 이왕이면 훨씬 나을 것이다. 자신과 자기 것을 동일시한다는 심리학의 관점으로 사물의 해석을 유리하게 하는 것도 좋은 삶의 태도 같다. 노란꽃 꿈 해몽을 찾아보니 희망, 행복 외에 경고도 있다.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이 모두 가능했다. 주관적인 꿈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나는 꿈이 잘 맞는다. 노란색 꽃이 나온 꿈 해석은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을 두고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긍정적으로 모든 해석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 적극적으로 미쳐서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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