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랑으로

by 이윤경

연이틀 해가 살짝 보일 듯 말 듯 하다. 장맛비가 오래 쏟아졌다. 전 같았으면 쨍한 해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품자 날씨 따위는 내 감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질 못했다.


그녀는 소리 내 읽으면서 낄낄거렸다. 누가 쓴 메모인지 알 수 없을 텐데도 그녀가 킬킬거리자 마치 홍해처럼 공간이 둘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와 사람들. 너무 당황스러워하는 내 표정이 보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 메모가 뭐가 그리 우습다고, 더구나 책을 필사한 문장인데 사람들은 비밀 접선하듯 했다. 나만 빼고 서로서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사람들은 안면을 바꾸었다. 그날부터 혼자였다. 밥도 혼자, 산책도 혼자, 쉬는 시간도 혼자였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양심 선언을 한 한 사람에 의해 나는 그들과 정식 만남 자리가 만들어졌고,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울면서 뛰쳐나갔다. 이간질을 시킨 것이 탄로가 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도 뛰쳐나간 한 사람에게도 왜 그랬냐 묻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나 대신 뛰쳐나간 사람이 혼자일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미 난 혼자가 편했고 그들과 다시 잘 지낼 마음이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서로 눈치를 보면서 조심조심 지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습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과잉 친절을 보였다. 나긋나긋한 말투가 부드럽고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친절을 가장한 친절한 사람들은 어차피 언제든 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나를 찾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지금은 만나지 않는다.


때로는 그냥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저절로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 사람과는 말보다 마음을 먼저 느끼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들은 조건이 아니라 사람을 품을 줄 알아 상처 주는 말은 알아서 삼간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몇 명이나 사람을 볼까 세어 본 적이 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평생을 절대 혼자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길 가다 스치는 사람들까지 무슨 관계일까 싶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도 사고가 나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에 의해 인생이 뒤바뀔지 모를 일이다.


요즘은 인터넷에서도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플랫폼을 배경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 지도 모르는 친구라니 우습지만 그 사람들과 속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를 알든 모르든 시간과 만남 횟수 상관없이 사람들은 나와 어마어마한 인연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답이 있다고 한정하면 불행할 이유가 한없이 많아진다. 하나의 정답은 나머지 모두를 틀린 답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만들어낸 가치로 다른 사람들을 재 자르고 늘린다. 하지만 그 정답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절대 혼자 살래야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정답이 언제 자신을 똑같은 불행으로 만들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마음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만 한다. 그 사랑이 온전할 때 마음도 말도 예뻐지는 것이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이 들어왔다. 나와 사람들은 이왕이면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조금은 있는 사람으로 살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진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와도 날이 흐려도 찬바람이 불어도 겨울이 와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우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으로 희석되었다.


살아보니 그리움이 남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운 시절만 남을 뿐이다. 나를 험담하거나 안 좋게 얽힌 사람들까지 대부분 다 잊어버린다. 그러니 힘들어하지 말자. 사랑이 많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사람을 나쁘게 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겐 사랑을 주고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사랑을 가득 담아보자. 나의 거리에는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시절이 그리운 어느 날 나는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린다. 보고 싶다. 지금이 지나면 또 지금이 그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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