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에세이(상상하여 쓴 미래에 가상의 현실 )
활동기와 관해기는 번갈아 나타났어. 증상이 없을 땐 딱 노래 가사가 떠올랐지. ‘환자인 듯 환자 아닌 환자 같은 너’ 하지만 보이지 않던 병의 존재가 드러나면 나는 무서워 떨었어. 제일 먼저 입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거부했고 무기력이 뿌연 안개처럼 너를 뒤덮었으니까. 그럴 때면 숨어있던 암덩어리가 기회를 포착하고 크론 꼬리에 붙어 따라 나올까 그게 제일 두려웠단다. 자식이 아플 때 다른 엄마들은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 하지만 나는 그조차 할 수 없었어. 너는 먹지를 못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더라.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날 꽉 안아주고 있는데도 몸서리치게 외로운 느낌이랄까. 고작 안절부절 서성이는 게 다였어. 행여 필요한 것이 있을까 수시로 주변만 빙빙 돌았다는 거 알고 있었지? 이런 날이 반복되는 삶을 살거라 생각하니 나는 그런 너를 두고 늙는 게 슬프프더라. 네가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걸 보면 최대한 조용히, 최선을 다해 거슬리지 않게 눈치를 보면서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어. 힘을 비축한 채 귀를 열고 언제든 소머즈가 되어 있었었지.
신약이 개발된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성했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염증이 왜 생기는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 염증을 막는 약도 개발이 어려웠던 걸까.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발전하는데도 왜 염증 하나 못 막을까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하곤 했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그동안 협착이나 폐쇄, 장 천공, 대량 출혈 등 듣기만 해도 아찔한 합병증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과 육아종이 실체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감사하고 또 감사해. 무엇보다 네가 활발한 사회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꿈만 같아. 진짜 눈이 번쩍 떠지는 뉴스였어. 두근두근 설렜어. 애인을 기다려도 이렇게 가슴이 뛰지 않았을 거야. 곧바로 너의 다음 진료 예약 날짜를 확인했지. 너는 심드렁했지만 나는 그 며칠이 너무나도 길었단다. 미리 앞서 가지 않으려 애썼어. 또 실망할까 봐.
네 병에 당사자보다 더 관심이 많은 나는 진료날 따라나섰지.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고 똑바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가닥 기회라도 잡고 싶었거든. 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진료실을 나올 게 뻔하잖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알았어.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느껴졌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 미소가 말해줬거든. 됐구나! 이젠 끝났구나! 이제 걱정 말라는 말이, 좋은 약이 나왔다며 고생 많았다는 위로가 진심으로 기뻤어. 눈물이 저절로 흐르더라. 봐, 엄마 말이 맞지? 엄마는 기도빨이 좋다니까! 희귀 난치성질환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를 돌아봤을 때 장난기 어린 네 표정. 잊을 수 없을 거야. 내가 울음을 참느라 애쓴다는 걸 알고 놀려먹을 타이밍만 찾고 있었잖아. 그렇게 나를 향해 걸어오며 농을 히죽대는 너.
“ 엄마, 나는 대상에서 제외래. 엄마가 울어서 안 해준대. “
그때 나는 생각했단다. 이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편히 눈 감을 수 있겠다고. 나는 웃으면서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들,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그동안 미안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날이 오기를. 내년, 내후년, 아니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꼭 그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이 오면 작은 엽서에 예쁜 그림을 그려서 편지를 써야지. 모두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막 나눠줘야지. 뭐가 감사하냐고 묻겠지? 그러면 나는 대답하겠지. 그냥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