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영원한 '동안'

by 이윤경

그날이다. 100세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너무 자주 돌아온다. 조직 검사를 그때까지 한다면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니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초조함에 앉지를 못한다.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충격으로 무너질 마음을 사전에 예방하는 나름의 방법이다. 첫 검사에서처럼 의사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고 싶지는 않다. 초연하게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린다. 바로 수술 사인을 해야 한다면 남편에게 나중에 연락해야지, 바로 입원실로 올라가면 오늘 출근하지 말아야지, 한참을 누워있어야 한다면 휴직을 할 거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이제서야 찾았는데 좌절하면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오래 아프면 ...... 별별 생각이 다 꼬리를 문다.


아들은 평소 피검사와 소변검사로 상태를 확인하고 2년에 한 번씩 내시경으로 더 확실한 체크를 한다. 처음 조직 검사와 캡슐내시경 결과를 눈으로 확인한 날은 충격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검사실로 나를 부른 기억 때문에 오늘도 혹시 호출이 있을까 벗어나지 못한다. 주변을 뱅뱅 돌고 있자니 커피를 사 올 걸 후회된다. 겨우 그깟 커피 하나를 못 참냐며 혼자 엉뚱한 자존심 싸움을 한다. 심리 안정에 효과가 있다던데 진짜 그런가, 떠오르는 아무 생각들을 놔둔다. 연신 검사 중 명단을 쳐다보는 나의 불안 초조가 대기실 분위기를 무겁게 누르는 느낌이다. 잠깐 나가야 할까 보다. 문 가까이 다가가니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이 나를 떠민다. 뭔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오겠지. 느긋한 마음을 가지려 애쓰며 짐짓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 아래층 커피숍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 커피나 마시자. 신의 영역이다. 어차피 결과에 따라 나의 몫은 정해진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커피를 마실지 말지 정도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뜨거운 커피를 사들고 숍에서 마시기 불안해 검사실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채 입을 대기도 전에 검사가 끝났다는 회복 대기 명단에 이름이 뜬다. 따로 부르지 않는 걸 보니 1차는 통과다. 괜찮다는 사인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비로소 의자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검사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초조가 수없이 반복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매번 검사를 하는 동안,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이 100세까지 반복된다는 건 괜찮다는 뜻이니까. 기다림이 끝나지 않기를, 그래서 이 기다리는 '동안'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오늘도 바라본다. 검사 결과는 2주 뒤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할 게 뻔하다.


칡꽃.jpg 칡꽃의 꽃말은 '사랑의한숩'이다. 마냥 좋고 행복한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사랑을 하면 한숨이 더 많이 나온다. 아파서, 힘들어서, 그리워서, 미안해서, 슬퍼서....

숨 막히게 칭칭 감고 또 감는 칡덩굴에 비하면 칡꽃은 너무 예쁘고 향도 좋다. '사랑의 한숨'이라는 꽃말이 의아했지만 사랑으로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보니 그 한숨이 이해가 간다. 한숨과 눈물로 만든 사랑을 경험하고 나서야 항상 행복한 사랑은 없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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