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쫒기 노하우
한때 난 내가 무당이 될 팔자인 줄 알았다. 벽이 계속 좁아지거나 집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가위눌림 증상을 겪다가 무속인이 됐다는 방송을 본 날 나는 이거구나 싶었다. 무속인과 똑같은 가위눌림증상에 시달리며 비몽사몽 피곤한 일상 중에도 나는 언제든 신이 오면 맞이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위눌림은 시작을 안다. 알지만 빠져드는 게 문제다.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현실과 비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는 나와 그런 나를 꼼짝 못하게 하려는 영과의 한 판 승부는 항상 지옥문 앞까지 가야만 끝이 난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옴달싹 못하게 갇힌 몸은 별 짓을 다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가 없고 아무리 소리를 내 보려 애를 써도 찍 소리조차 낼 수 없다. 더 환장하겠는 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까지 뇌는 깨어 있어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공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가는 이 공포를 나는 익히 이미 알고 있음에도 기어코 매번 죽을 것 같은 구렁텅이로 빠진다.
어릴 때부터 가위눌림이 심했다. 잠이 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 꿈은 아니다. 남들이 볼 때는 눈을 감고 얌전히 자고 있단다. 내가 나를 볼 수 없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침대에 누워 평온하게 자고 있는 모습으로 나는 보이지 않는 귀신과 아무도 모르는 전쟁을 치른다. 남에겐 웃긴 이야기가 나에게는 펑펑 울 정도로 괴로운 현실의 반복이다. 누구는 심신이 허약해서 그렇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예민해서 그렇다고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나는 무당이 되든지 귀신과 맞짱을 뜨든지 양단간 결정이 나야만 했다. 귀신도 업그레이드가 되는지 점점 더 자주 무섭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혼 전 부모님 집에서는 벽이 좁아지거나 집이 무너지는 정도였다. 그것도 무섭긴 했지만 물리적인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아서 견딜 만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혼자 떨어져 나오면서는 양상이 달라지고 말았다. 실체가 없던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다 그 귀신들은 아예 내 집에 정착을 해버렸다. 그 실체는 가위에 눌렸을 때만 보이는 거라 잠에서 깨면 사라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다. 베란다 한 쪽 끝에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앉아 놀고 있는 어린 아이 셋은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인데도 기이한 분위기가 풍기는 그 모습이 마치 저주받은 인형처럼 보였다. 남자 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둘 중 남자 아이가 첫째인데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나도 답할 길이 없다. 그냥 아는 거니까. 모골이 송연해 혼자서는 베란다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빨래를 마루에 널었는데 남들은 내가 습도 조절을 하느라 실내에 빨래를 넌 줄 안다. 그 아이들은 아직도 그 집 베란다에서 놀고 있을까.
처음 파주로 들어와 살게 된 아파트는 신축으로 굉장히 넓고 깨끗하고 좋았다. 신도시가 형성되는 중이라 주변이 다 새 아파트였고 특히 우리 아파트는 평수가 유난히 넓게 빠져서 한껏 부풀었었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나는 더이상 귀신과 싸우지 않기를 꿈 꿨다.하지만 그 집 주인공은 첫날 밤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장군이다. 안방 앞에 커다란 덩치로 딱 버티고 서서 나를 막았다. 광화문에 서 있던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딱 맞는데 천장까지 꽉 차게 몸집이 큰 데다 갑옷까지 입어서 올려다 보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부부 침대와 아기 침대를 새로 들여 놓은 제일 마음에 드는 안방을 첫날 이후 그렇게 갑옷 입은 장군에게 내주고 나는 마루에다 이불을 깔고 아기와 잠을 잤다. 자주 깨서 우는 아기를 달래고 우유를 줘야한다는 핑계로. 그 장군은 아직도 그 집 안방 문을 지키는지 모르겠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무서운 건 검은 그림자다. 깜깜한 밤 홀로 걸을 때 뒤따라오는 두려움, 삐걱대는 재래식 화장실에 드리운 무섬증, 아무도 없는 집에 누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오싹함을 다 합쳐도 모자랄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귀신. 나는 이 귀신 이야기를 했다가 팥을 뒤집어 쓴 적이 있었다.
점점 만성피로에 찌들어 누가 봐도 신경쇠약증 환자 같았던 그때 우연히 아는 지인이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다. 신기했다. 아는 사람이 신을 받았다니 진짜 귀신이 있는 게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가위눌림이 의학적으로 램수면 1단계에 발생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나는 힘들었고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혼자만의 괴로움이 비약적으로 생각을 키웠다. 나에게 꼭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예를 들어 영과의 교접같은.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니까. 만약 귀신이 선택한 몸이라면 괜찮은 귀신을 물색해야지. 얼토당토 않은 각오까지 하고 찾아간 그 곳은 신내림을 받은 딸이 걱정되어 부모님께서 차고를 고쳐 신당을 차려주었다고 했다. 당시 지인은 20대 초반으로 나이도 어려서 그랬겠지만 나름 점 좀 보러 다닌 나로서는그녀는가 스스로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아 정말 어리숙해 보이기만 했다. 잠시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주로 내가 물었고 대답도 영 신통찮아 잘못 왔다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후회했지만 어쩌랴, 이미 왔는 걸. 흐지부지 서로 눈치만 보다가 그래도 이왕 온 김에 말이라도 해보자 싶어 나는 가위눌림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귀신을 쫓아야 한다며 마당으로 나가자고 했다. 마당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앉으라는 손짓과 함께 그걸 또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는 나. 이게 뭔 짓인가 싶었지만 그대로 나올 용기도 없었다. 순간 2층 창문에 숨어서 보는 지인의 어머님 실루엣이 보였고 어디에 숨겨 나왔는지 모를 빨간 팥이 동시에 뿌려졌다. 아…사라지고 싶다. 나는 그 팥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렇게라도 해서 가위눌림이 해결 된다면 좋겠다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 뭐든 마음을 비우면 편안해 진다.그녀는 무당으로 돈을 벌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겠던데 아직도 하고 있으려나.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에 널을 뛰는 인생살이가 내게는 불안을 키웠었던 것 같다. 안그래도 가위눌림이 있던 나는 그 불안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걱정으로 늘상 생각이 많았다. 잠도 깊이 자지 못해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일상이 피곤하다보니 눕기만 하면 가위눌림이 심해졌다. 자려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가위눌림이 심해지고 가위눌림이 심해지면 공포에 휩싸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던 것이다.
가위눌림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불안을 다스릴 줄 아는 나이가 되었고 무엇보다 일상을 조절할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해졌다. 이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만의 규칙적인 습관을 나의 의지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과 작업실과 헬스장의 쳇바퀴는 몸을 놀려 밤잠을 푹 자게 만드는 나름 오래 걸려 만든 나만의 귀신 쫓기 노하우다. 거기에 세월이 가져다 준 여유는 중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플러스 대한민국 아줌마의 배포까지 장착되었다. 이는 귀신도 범접 불가인 아우라를 뿜어내는지 횟수가 많이 줄어 요즘은 귀신을 본 지 꽤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