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움길이 사연길, 사연길이 인생길
힘듦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는데 지름길은 없단다. 에움 길마다 사연 길이라 했다. 인생에는 모두 아마추어만 있을 뿐, 전문가는 없다.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이니까.
아버지, 나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되지 못한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됐어
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드라마 인간실격)
짧은 영상으로 올라온 드라마 대사를 들으며 울고 말았다. 아버지 살아생전 내가 아버지 앞에서 울며 했던 말이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네 뒤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힘주어 위로를 건넸다. 아버지도 알고 계셨으리라. 아무리 소중한 자식이라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어 자식을 바라보니 가슴이 뻐근해 온다. 어른만 되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자식이 에둘러 먼 길을 가는 여정은 아이 때 돌봄에 비할 게 못 되었다. 지름길이 있다면, 꽃길이 있다면 깔아주고 싶은 이 심정이 내 아버지의 마음이었겠구나 생각하며, 나도 자식에게 똑같이 힘주어 용기를 건넨다.
엄마가 네 뒤에 이렇게 딱 버티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고 싶은 거 다 해! 엄마가 있잖아.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고부터 우리는 매일 산책을 했었다. 처음엔 나란히 옆으로 서서 먼 길을 종일 걸었다. 다음엔 손을 잡고 가까운 길을 걷다가, 점점 그 길은 짧아지고 걸음은 느려졌다. 그러다 나중엔 집 앞 마당에도 나가기 힘들어졌고, 종종 일어날 기운이 있을 땐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줄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버지 걷는 속도에 맞춰 내 발걸음을 떼던 그때 그 길이 얼마나 빠르던지, 어떤 지름길보다도 재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일부러 멀리 돌던 산책길, 아버지 손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온기, 두런두런 나누던 말들. 그립다. 그리울수록, 생각날수록 그렇게 빨리 가고 싶어 했던 지름길을 이미 나는 항상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없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에움길과 지름길은 삶에 있어서는 똑같은 사연길이다. 더 먼 길을 돌아가고 싶을 땐 지름길이고, 빨리 가고 싶어 안달일 땐 에움길이고, 지나고 보면 모두다 사연길인 것이 바로 인생길이다.
란타나는 적응을 잘 해야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자기 고향에서처럼 커다란 가로수로 살 순 없겠지만 화분에서 란타나로 살아간다고 란타나가 아닌 건 아니다. 멀리 돌고 돌아 낯선 곳에서도 적응을 하면서 사랑받는 란타나처럼 인생이 낯설어도 그때마다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노력이 가장 최고의 인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