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순전히 양심 때문이었다. 너무너무 싫은데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그 알량한 양심이 한 많은 생명을 살린 것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집은 개들로 난리 통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행복하겠지만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털이 구석구석 먼지처럼 날아다녀 청소도 힘들뿐더러 돌돌이로(테이프) 일일이 옷감에 묻은 털을 떼려면 빨래도 온종일 걸린다. 거기다 괴로운 냄새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개냄새가 고소하다며 발바닥을 코에 대고 맡곤 하지만 나는 그 냄새 때문에 코를 막는다. 온갖 향샴푸를 써봐도 없어지지 않는다. 신기한 건 개들도 아기 때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시티'는 눈도 못 뜬 갓난아기 때, 참치 잡는 굵은 바늘에 생고기와 함께 걸려 풀숲에 버려졌다. 파양되어 우리 집으로 온 '짱'이가 산책 중에 물고 왔다. 뱉으라고 아무리 혼을 내도 기어코 집 안에 들어와서야 내려놓았다. 검색을 통해 24시간 동물 병원을 찾아 데리고 갔고, 의사는 개 장수가 새끼는 돈이 안되니 버리고 어미를 잡아갔을 거라고 했다. 다섯 개의 굵은 바늘에 생고기를 걸어 던지면 그 고기를 덥석 무는 것이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어미는 고기를 물었을 테고 옆에 있던 새끼 중에 '시티'가 목에 걸려 딸려 나온 것 같다. 일단 급하게 수술을 해야 했다. 다 나으면 신고하겠다는 내게 의사는 멀쩡한 아이들도 죽는데 아픈 아이를 누가 데려가겠느냐며 키우는 조건으로 수술비와 치료비를 무료로 해주겠다고 내 눈을 쳐다보았다. 하아, 눈빛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개육아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새끼들은 개냄새가 안 난다. 그리고 처음 본 사람을 진짜 엄마로 각인한다. '시티'는 의사선생님 보다 더 애절한 눈빛으로 처음 눈을 떠서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이후로 얘는 자기가 개인 줄 모르는 것 같다.
'시티'를 물고 온 '짱'이도 파양된 아이다. 너무 짖어서 못 키우겠다며 보호소로 넘기려는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남편은 모른 척하면 벌받는다며 나를 협박했다.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매일 나에게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느니, 누가 너를 그렇게 버리면 좋겠냐느니, 걔는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느니. 정말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짱'이는 남편의 온갖 협박에 내가 기권을 하면서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첫날 밤새 화장실을 참고 참다가 나가서 볼 일을 보는 걸 보고 내가 놀라서
" 너, 짱이다!"
한 것이 이름이 되었다. 훈련을 시킨 것도 아닌데 후로도 짱이는 집 안에서 절대 볼 일을 보지 않았다. '짱'이는 너무 짖어서 버려졌는데 '봄'이는 너무 안 짖어서 버림을 받은 아이다. 진도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둔 '봄'이는 그 후예답게 늠름하다. 족보까지 있는 아이를 파양을 하자 남편의 오만 협박이 또 시작되었고 나는 또 지고 말았다. 정말이지 남편을 파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과 개들은 신이 났다. '봄'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우리 집에 와서는 잘도 짖고 말도 굉장히 많다. 우우웅우~우우어~볼 때마다 쫓아다니면서 계속 지껄여 댄다. 남잔데 수다스럽다고 뭐라고 하면 대꾸까지 한다. 잘만 짖는구먼 파양 이유가 참 알량하다. 그런 사람들을 믿는 개라니 어찌 개만도 못하단 말이 생겼는지 알 것도 같다.
모두 버려진 아이들이라 나는 싫어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옆에 오지 말라고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어 대며 도망을 다녀도 신났다고 나를 쫓아오고, 나는 너 싫어! 말해도 좋다고 나를 향해 뛰어온다. 하아, 나는 분명 말했다. 너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약속은 한다. 버리지 않을게. 구박도 하지 않을게. 다만, 나에게 사랑을 바라진 마라. 나의 마지막 최선이다. 알 거다. 내가 너희들 냄새와 털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지. 난 정말이지 진심으로 착하게 살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는 동안 너희들만이라도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