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보여준다. 매일 규칙적인 하루를 연속으로 반복해 담았다. 그날이 그날 같다. 뭐가 완벽한 날이라는 건지 끝까지 보고서야 알았다.
나는 여태 멀쩡했었다. 아니, 적어도 손가락이 저린 요즘과 비교해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24시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게 되고부터는 더 이상 일상이 일상이 아니게 되었다. 평소 하던 모든 행동이 제약이다. 컴퓨터가 힘들다. 일할 때마다 손을 위아래로 털어야 하고, 책을 읽을 땐 저리지 않은 자세를 찾아 계속 바꿔야 하고,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자주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주무른다. 운동을 못 하고, 병원을 매일 간다. 그림 그리기도 힘들다. 별게 아니던 모든 것들이 새삼스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운전을 할 때도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느라 누가 보면 운전 중 체조를 하나 의아해 할 모양새다.
손가락이 아프기 전까지는 나이 들면서 빠지는 근육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피곤하고, 여기저기 몸이 불편하고, 순발력이 떨어져 움직임이 늦고, 조금만 다른 강도와 빠름이면 대번에 아파서 활동이 괴롭고, 병원을 순례하고, 잠만 자고 싶고, 어렵게 불 지핀 의욕은 걸핏하면 꺼졌다. 왠지 삶에 질서가 없는 것 같아 한심했었다. 모든 게 엉망으로만 보였었다. 그런데 손이 저려오자 일상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그때가 많이 정상이었다.
그보다 더 전엔 젊어서 힘들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랐고, 한 40에서 50쯤 되면 뭐든 돼 있겠지 생각했었다. 아무거라도 인생이 결정이 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다른 삶이 부러웠고,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에 눈이 갔다. 책을 읽으면 내가 제일 못났고, 그림을 그리면 내가 제일 못 그리고, 돈을 보면 내가 제일 가난하고, 사람을 보면 내가 제일 바보 같았다. 그래서 남의 인생만 보였다. 정상 같지 않았다. 최고로 가장 멀쩡했던 일상을 그렇게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완벽한 일상을 불안과 불만과 불행으로 가득 채운 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스스로 하루를 망치고 살던 나와 영화 속 주인공이 비교되며 그의 따뜻한 삶이 다가왔다. 화장실 청소가 멋있을 일은 아닌데 집중하는 그 모습 자체가 감동을 준다. 아니, 변기를 끌어 안고 비누칠을 하는 게 뭐가 멋있냐고. 하지만 제일 더러운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매일매일의 반복에서 어느 순간 커다란 인생의 의미가 보이는 것 같았다. 힘껏 삶의 굴레를 잡고 살면서 볕뉘 같은 순간을 포착하는 그가 행복해 보였다. '히라야마'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 그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행복'을 스스로 찾는다. 흔들리지 않고.
‘히라야마’의 퍼펙트 데이즈가 일상이듯 그날이 그날인 나의 하루들도 완벽했다는 걸 나만 몰랐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완벽했었구나! 저린 손을 주무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나의 지금이, 나의 일상이 완벽한 날들이란 사실이 새삼 행복한 하루다.
흙을 치대고 주무르고 밀고 굴려서 만든 이 그릇은 무거워서 들지도 못한다. 그때는 맛있는 샐러드를 잔뜩 담아 식탁에 놓을 생각으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지금은 말린 꽃을 담는 용도로 인테리어에 쓴다. 쓰임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생각 차이가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열흘을 만들고 그 열흘이 나를 채운다. 내 하루들은 그래서 단단하다. 저 무거운 그릇이 더 이상 그릇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답듯이 나도 멀쩡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며 오늘도 완벽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