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듬지

달카당

by 이윤경

글을 쓸 때면 나는 지나온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그날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들,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들, 내 것이라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다. 곱씹고 곱씹어 밖으로 끄집어내면 결말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듯 나는 전지적 시점이 되는 느낌이다. 삶을 이해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향의 우듬지를 바라보는 것 같아 그럴 때면 조금 안심이 된다.



몇 번째 입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병원 6인 입원실. 침대마다 누워있는 환자와 보호자(간병인)까지 12명이 매일 함께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보호자는 나만 빼고 모두 조선족 간병인이었다. 각 입원실마다 조선족 간병인이 더 많았고 24시간 상주 돌봄도 꽤 되었는데 그녀들은 병원 정보에 빠삭했다. 동물의 왕국이 생각났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뭉쳐서 지낸다. 환자들과 간병인, 병원 관계자들은 한 무리씩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정글 같았다.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가 하나의 세계로 뭉쳤다가 하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호수의 물을 먹는 것 같아도 동물의 왕국에서는 항상 노리는 적이 숨어 있었다. 병원도 그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코드 블루(심폐소생술 (CPR) 환자가 생길 경우 나오는 병원 내 안내 방송)가 들렸다.


아버지는 침대 머리를 세워달라고 하셨다. 발치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각도를 맞추고 등에 베개를 대어 드렸다. 집에서 가져온 얇은 이불도 둘둘 말아 무릎 아래에 끼워 넣었다. 편하냐고 묻는 말에 아버지는 들릴락 말락 짧게 응 대답하며 눈은 여전히 그분께 가 있었다. 나도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척했지만 사실은 귀가 열려 있었다. 병원을 집처럼 들락거리지만 돈 걱정은 없는 분이란다. 간병인들이 날라다 주는 정보는 차고 넘쳤다. 병원 내 구축된 초고속 망운 걷다가도, 휴게실에 앉아 있다가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정보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뿌렸다. 신속하게 휙휙 여기에서 저리로 저기에서 이리로 말들이 떠돌아다녔다.



아까부터 간호사는 달카당 달카당 부러 큰 소리를 내며 화가 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드시면 안 되는 분인 게 확실했다. 매일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싸웠기 때문이다. 몰래 숨어서 먹는 환자 한 명을 여러 명의 간호사들은 이기지 못했다. 복도 끝에서 등을 돌리고 먹는 모습은 철딱서니 더럽게 없는 나이만 먹은 어른이었다.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일부러 들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머리만 박는 새대가리보다 더 한 거 아닌가 싶어 기가 찼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검정 비닐봉지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냉장고 앞에 서 계셨다. 이미 하나는 입에 물고 나머지를 냉동고에 넣으며 병실 가운데 서서 쩝쩝 맛있게 드시는 중이었다. 금식 중인 다른 환자들 앞에서 참 야박하고 철이 없네 생각하는 찰나 간호사가 들어와 기겁을 했다. 한참이나 실랑이가 벌어지고도 간호사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뺐지 못했다. 어차피 죽을 거 먹을 거나 실컷 먹게 놔두라며 길길이 날뛰었고고 간호사는 입을 꾹 다물고 투약 무빙 트레이를 더 크게 달카당거리며 밀고 나갔다. 그날 오후 숨 가쁘게 들리던 코드블루. 그분은 금세 병원 복도를 떠돌아다니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다시는 병실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렇게도 드시고 싶어 하시던 아이스크림을 실컷 드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훗날 그분의 아이스크림이 부러워졌다


아버지는 심각하지 않은 결석으로 입원을 하셨고 수술도 어렵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투석과 여러 합병으로 10년 이상을 고생하신 터라 장기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금식이 길어진 탓에 배가 고프다며 굶어 죽겠다고 농담을 하셨는데 진짜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마지막까지 말을 안 듣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드시고 돌아가신 그분과 의사 말을 정말 잘 듣다가 굶은 채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중 누가 더 나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버지께 드시고 싶다는 곰국을 드릴 거라는 사실이다.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먼저 보내드리고 따라 내려가는 사이 코드블루가 들렸다. 아버지인 줄 몰랐다. 자주 들리던 코드블루는 방송 소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코드블루를 마지막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이제 코드블루 방송이 들리면 기도를 한다. 마지막이라면 편안히 가시게 도와달라고.

병원은 인생이 진하게 응축된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 순간 생과 사를 가르는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희망을 부여잡는 곳에서 나는 나의 우듬지를 보았다. 새로운 도전과 성장, 희망과 생명은 삶을 등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