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놀이

탈출구

by 이윤경


처음부터 그리기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시작된 나만의 비밀 탈출구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훌훌 다 털어버리고 느슨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움을 그림으로 날려 보내고 나면 감당할 만큼의 그리움만 남을 것 같았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재밌는 놀이를 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장난감이자 모든 곳이 놀이터이던 그때는 모두가 어린아이의 창조적 삶을 살았다. 그 창조적 에너지는 태초부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재능이다. 요즘은 부모들이 커다란 칠판을 준비해 주던데 내가 어릴 땐 집집마다 여기저기 낙서가 많았다. 그 낙서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첫 놀이가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확언을 하는 데는 이론으로 배운 걸 경험한 증인이기 때문이다. 나이 차가 많은 막냇동생이 태어나고 깨끗했던 우리 집은 총 천연색으로 뒤덮인 적이 있었다. 지금은 꼴 보기 싫은 남동생이지만 어릴 땐 정말 예뻤는데 셋째 동생이 지금도 00을 닮았다고 우기는 걸 보면 인물이 빠지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아들선호사상에 푹 젖은 부모님이 딸을 넷을 낳고도 포기하지 못해 태어난 그 귀한 남동생은 뭔가를 손에 쥐면서부터 창의력을 발휘했었다. 처음엔 동생이 그리는 걸 내가 이렇구나, 저렇구나 말을 만들어서 떠들었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설명을 했었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엄마라고 하더니 점점 알 수 없는 복잡한 낙서를 하고는 뭐라고 말도 길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때 예술 창작 활동을 정말 활발하게 했었던 거다. 동생의 그 이후는 모르겠는데 나는 거듭 발전해 평생 가장 재밌는 놀이에 심취한 때가 한 번 더 온다. 우리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나를 보고 내 성격을 규정해 이상한 사람 취급할 때가 많다. 엄마는 귀신 나온다며 당시 항상 내 방문을 닫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즐기던 나만의 놀이는 마음에 드는 잡지(주로 논노였다)를 오려 벽을 가득 채우고 색색가지 펜으로 설명과 코멘트를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성냥갑을 방문에 틈이 없게 붙였다. 그때는 디자인이 독특한 성냥갑이 많았다. 미술학원 언니, 오빠들이나 선생님들(선생님들이 거의 대학생이었다), 친인척들에게 구한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장롱과 책상에 학용품부터 옷이나 신발까지 내 물건들은 매일 제 자리에 그대로 있나 확인하고 정리를 했다. 누가 건드린 흔적이라도 보이면 하도 난리를 쳐서 엄마가 저 미친년 또 시작이라며 한 마디 하시고는 집을 나가신 장면이 기억난다. 내가 이런 놀이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도 곧 현실에 밀려 손을 놓고 말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놀이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직장 다녀야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해서, 부모님을 돌봐야 해서…하지만 아마도 어른이 되었어도 나는 늘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온갖 핑계로 빼앗긴 욕구가 없는 존재가 되었어도 재밌는 인생을 마음속 깊이 갈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재밌는 놀이터는 이미 각자의 삶 속에서 부릉부릉 시동이 켜졌고 그 원동력으로 어른이 된 우리들은 자기의 놀이터를 찾은 것이 아닐까.

순전히 그리워서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움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사라지길 반복했고 영영 헤어지고 만 사람들과 인생들이 늘 주변을 맴돌았다. 그 인생들을 잡고 싶었다. 그리움을 그리는 그림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나를, 그들을 기꺼이 만나주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에세이는 그리움에 눈물을 흘려주고, 고단함에 의미를 담아주고, 외로움에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표현이 되어 나오는 글들에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짬짬이 생각의 단초를 잡는 것도 즐거웠다. 이미 물리적인 시간이 잔뜩 쌓인 인생이고 그런 삶 속에 파묻혀 사는 나이가 되었지만 언제부턴가 잊어버린 놀이가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진다. 놀이에 푹 빠져 살고 싶다. 그때 어린 나의 놀이처럼 그리고 쓰는 일상이 재밌다. 행복한 놀이터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되어 계속 만지작만지작 종일 그림을, 글을 주물럭댄다. 논노 잡지가 아직도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임수진 작가님 말씀처럼 모든 글의 소재가 내 안에 있고, 글을 쓸 재료가 '나 자신'이기에 글이 더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크지만 가장 작은 나에서부터 시작된 그리기와 쓰기가 세상을 향한 느낌이다. 내 마음이 그만큼 열렸다는 뜻이겠지.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글을 썼을 뿐인데 오월의 햇살처럼 하루가 빛난다. 요즘은 일상의 자투리를 허투루 쓰지 않는다. 틈틈이 그리고 쓴다. 어른의 재밌는 놀이는 어쩌면 본래의 자신을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행복했던 ‘나’는 재밌는 놀이를 잊어버려서 그동안 사는 게 힘들었지도 모르겠다. 카르페 디엠! 제군들 현재를 잡아라!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나는 열심히 살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죽은 다음에? 더 이상 미루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림도 글도 결국은 삶을 이야기하는 표현 방법이다. 아무것도 없는 인생은 없다. 하나하나 써내려 가다 보면 불행도, 행복도, 사랑도, 미움도 보인다. 그 삶을 읽어내는 것이 어른들의 재밌는 놀이다.




해바라기는 뜨거운 태양 아래, 그 어떤 꽃보다도 당당하게 서 있을뿐더러 강인한 생명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상징한다. '프라이드'라는 꽃말, 즉 자부심은 고개를 곧게 세운 모습에서 당당함과 자신감이 넘치는데 그래서 인테리어 장식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꽃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내가 즐기는 놀이에 자부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