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과 사기 중간쯤

믿으면 행복

by 이윤경

운전면허 갱신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전자면허증도 신청이 가능했지만 나는 뭐든 현물로 만질 수 있어야 안심이 된다. 마침 사진도 딱 두 장이 남아 있었다. 요즘은 1년만 지나도 내 얼굴이 너무 젊어 보여 낯설다. 희한한 건 사진 찍을 땐 너무 늙어 보여 놀라고 금방 지나면 또 너무 젊어 보여 놀란다. 늙는 속도가 내가 너무 빠른가 생각하며 얼굴과 사진을 비교해 본다. 거울 한 번 보고 사진 한 번 보고. 객관적으로다가 사진이 좀 젊어 보이나?


면허증 발급 장소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경찰서 내에 있었던 것 같았는데 주차장 옆으로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벽면 TV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고, 반대쪽 화면에서는 운전에 관련된 안내가 반복적으로 보였다. 안내하는 사람이 중앙 번호표 앞에 서 있고, 번호표를 뽑고 사람들이 앉아 기다리는 대기석은 자리가 충분했다. 눈을 들면 정면으로 접수대가 보이는데 1번부터 안과 밖으로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크기 칸으로 나뉘어 양쪽으로 줄을 맞춰 길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각 칸마다 투명이라 일하는 사람들 표정이 다 보이는 것과 접수대가 많아 진행이 빠른 것도 좋았다. 순서 번호는 눈에 아주 잘 보이게 전광판과 각 접수대마다 동시에 숫자불이 들어왔다. 지금 가지고 있는 면허증을 받을 때만 해도 시장 바닥에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새 이렇게 달라졌다. 앞으로 10년 뒤면 또 어떻게 변할까. 그때도 나는 운전을 하고 있으려나. 번호가 뜨는 걸 확인하고 일어나 자리에 앉으며 사진과 면허증을 내밀었다. 얼굴 한 번 보고, 면허증 사진 한 번 보고, 가져간 사진을 한번 본다. 괜히 민망해진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진을 다시 찍어 오란다. 뭐 그렇게까지 다른 것 같지 않은데 까탈스럽긴! 비슷한 거 같구먼 그렇게 차이가 나나 생각하며 근처 사진관을 물었다.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근처에 사진관이 없으면 다시 걸음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다행이다. 실시간 면허증 사진과 영정 사진을 찍는다는 입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잘 찍으면 엄마 영정 사진도 여기서 찍어야지. 사진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면허증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말에 가져온 사진이 많이 달라 다시 찍어오란다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며 웃었다. 이상해... 일하시는 분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던데 혹시 사진관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거 아냐. 그래, 내 보기에 내 사진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다 이상해, 혼자 소설을 쓰며 사진을 찍었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라, 눈을 조금만 크게 떠라, 턱을 집어넣어라, 미소를 지어라, 모델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은 아주머니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있다 들어온 젊은 여자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더니 나에게 여기와 앉으세요 한다. 자기가 보는 모니터 말고 옆에 있는 다른 모니터를 나에게 돌려놓는다. 응? 뭐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나는 실시간 사진이 이런 건 줄 몰랐다. 세상에! 처진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눈이 점점 더 커지고 늘어진 심술 주름이 서서히 사라졌다. 납작한 머리도 봉긋 살아나는 게 진짜 실시간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이거 완전 사기다. 퇴짜 맞은 내 사진보다 이게 더 사기다. 정말 팽팽하고 반짝이는 피부, 볼륨이 봉긋 살아난 헤어스타일, 오뚝한 코, 빨간 입술이 AI 수준이다. 심하다 싶어 나는 조금 덜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젊은 여자분은 또 조금씩 입꼬리도 내리고 눈도 줄이고 주름도 약간 살린다. 웃기다. 내가 너무 재밌어했더니 요즘 다 이렇게 한다며 얼굴 그대로 찍어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너무하다 싶어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워라, 괜찮다, 어색하다, 아니다...

내 얼굴만큼이나 세상도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핸드폰만 필터를 쓰는 게 아니라 사진관에서도 실시간 사진을 그림처럼 바꾸다니 놀라웠다. 내가 들고 온 사진보다 더 어색한 새로 찍은 면허증 사진을 들고 나는 다시 경찰서를 향해 걸으며 궁금해졌다. 이게 과연 통과가 될까? 놀랍게도 나는 그 사진으로 면허증을 받았다. 내 눈에는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가 반들거리는 새로 찍은 사진이 훨씬 사기 같구먼 누가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기를 노리고 나는 젊어 보이는 걸 좋아하는 엄마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그 사진관을 다시 찾았다. 우리 엄마는 딸보다 피부가 좋다는 말과 딸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딸 늙어 보이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완벽한 사기 사진을 엄마는 완벽하게 믿었다. 노인정에서도 다 나더러 피부가 너무 좋다고 한다며 어때요? 내 피부가 그렇게 좋아요? 행복하게 묻는 엄마. 내 면허증 사진을 찍었을 때만 해도 사기라며 속으로 엄청 웃었는데 엄마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괜찮은 방법 같다.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그래, 좀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데 이건 사기가 아니라 수정이라고 해도 옳을 것 같다. 수정한 사진을 곱게 지갑에 넣고 엄마는 아주 흡족하게 문을 나섰다. 분명 노인정에 가자마자 저 사진을 자랑할 것이 안 봐도 비디오다. 믿으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