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나의 이야기

주절거리는 쓰기

by 이윤경

시작은 그랬다.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아버지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 미소, 그 표정, 그 말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자꾸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길 없어 그냥 쏟아 낼 생각이었다. 아무도 묻지 않는 아버지 인생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내 아버지란 사람을, 특별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아버지에 대해 쓰고자 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다. 쓰기를 통해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싶게 쓰려던 아버지 이야기는 한 줄도 못 쓴 채 내 이야기만 주절거린다. 벌써 3년째.

쓰려니 그랬다. 온통 늙으신 부모님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다. 다른 듯 닮은 인생들이다. 모두 별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다 쓸 이유는 분명했다. 출중한 문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도 희귀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아버지니까, 내 아버지 인생은 다시없으니까, 우리 부녀의 시간은 또 오지 않으니까 별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그래도 나는 하고 싶었다. 노트북을 펼친다. 무얼 쓸 거냐 머리는 아버지에 대해 묻는데 손은 내 이야기를 쓴다. 아버지를 쓰고 싶지만 아버지를 쓸 수 없는 고통이 하나 늘었다.

마음이 그랬다. 술만 드시면 이북에서 어찌어찌 어린 나이에 홀로 내려와 땅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고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만 맴돌았다. 그 말이 내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소하고도 행복한 하루하루를 낱낱이 써 내려가는 것으로 아버지의 삶을 남겨 드리고 싶었다. 그 힘듦을 상쇄시켜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억에 저장된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 없었다. 생각이 거듭될수록 외로움과 고독 사이에서 홀로 서성이는 아버지가 느껴져 나는 이제야 가슴을 친다. 나의 대부분 기억은 아버지의 술주정과 아프신 다음 병자 모습이 거의 다다. 다행히 아버지가 아프신 10년 동안 둘만의 시간이 많았던 것에 위로를 받는다. 누가? 다 내가 받는 위로가 아니던가!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위해 쓰고 싶다. 마치 그래야지만 아버지가 살아남은 보람이 있는 것처럼. 이 마음은 나를 위함인가 진정 아버지를 위함인가.

지금은 그렇다. 아버지가 여전히 쉼 없이 떠오른다. 시간이 가면 잊힌다더니 그건 아니었다. 말할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더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다. 그냥 여전히 나는 주절거리고 있다. 계속 떠오르는 대로 조금씩 아버지를 조미료처럼 톡톡 뿌릴 뿐이다. 결국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고 말 것 같다. 나는 쏟아내고 싶은 마음 대신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주절거리는 쓰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쓴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결국 아버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 하나하나 붙들고 써내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이다. -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