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연장선

by 이윤경

나에게 그림은 삶의 연장선이다. 세상을 향한 손짓이며 타인을 보는 눈길이다. 완성한 그림은 꽃이거나, 건물이거나, 풍경이거나, 사람이지만 그 그림에는 내 마음이 담긴다. 표현이 되어 나오는 형태나 색은 그래서 나의 감정이요 시선이다.


스스로 만족이 없던 시기에 자만이 가득했었다. 보여주는 세상에 살면서 드러낼 것이 없던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속였다. 철저하게 숨기고 가리고 지워서 깔 맞춤 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런데 점점 누구를 위한 노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그 모습을 누가 판단하는지도 헷갈렸다. 보통 깔 맞춤은 옷을 고를 때 쓰는 말이다. 색이 어울리는지, 분위기는 맞는지, 전체가 조화로운지를 따진다. 남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깔 맞춤하느라 가짜 나를 치장했다. 정작 진짜 나는 나도 모르게 지워지고 있었는데.

작가에게 그림은 자기 안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세계다. 머릿속에 이미 구도가 있고, 색감이 있고, 리듬이 있다. 작가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 정도면 됐다 생각이 들면 손을 멈춘다. 이때의 완성은 보여지는 외부 뿐 아니라 내부적 깔 맞춤도 포함된다. 내 감정과 보이는 표현이 맞는지, 전하고 싶은 것과 결과물이 일치하는지를 본다. 그렇다면 그 그림이 완성되었는지는 내가 결정하는 걸까.

이 지점에서, 겸손이 필요했다. 작가가 끝났다고 하는 순간, 그 그림은 다시 시작된다. 관객에게 보이는 작품은 더 이상 작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완성은 하나의 의견일 뿐, 최종 결론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타인의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는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걸 인정하는 태도, 즉 자기완성에 대한 겸손이 필요하다. .

독자에게 그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깔 맞춤이다. 독자는 작가 의도를 모른 채, 자기 경험과 감정으로 그림을 느낀다. 삶에서 무엇과 닿는지, 자신과 어울리는 색인지 독자가 느끼는 완성 역시 자기만의 맞춤이다. 작품과 인생이 서로 만나는 순간, 그림은 비로소 독자에게 완성으로 다가간다. 어떤 그림은 수십 년을 떠돌다가, 어느 날 한 사람에게 갑자기 완성이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상실, 사랑, 후회, 희망이 그림과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 작품은 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고, 의도와 전혀 다른 해석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완성은 최고의 안성맞춤이 된다. 내 손에서 떠난 작품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겸손이다.

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의 의미까지 소유하지는 않는다. 이걸 깨닫고 나니 인생이 다르게 보였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 안정, 행복이라는 색에 나를 억지로 맞추려던 노력이 겉으로는 그럴듯했지만, 어딘가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색을 칠하면서 타인의 기준에 기대려 했다. 남의 색을 빌려 입으면서, 그것이 내 옷인 척했다. 세상과 맞추는 대신, 나 자신과 맞춤을 시작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불편해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포기해야 할 것을 인정한다. 의외로 자존감이 아니라 겸손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택이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삶이 어설프다는 것을 받아들이니 저절로 자만심에 빠졌던 내가 보였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보는 능력이다.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없는 지금이 훨씬 편안하다. 더 이상 세상에 맞추느라 몸을 구기지 않고, 그렇다고 세상을 무시하며 혼자 튀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어울리는 색을 고를 뿐이다. 그림 완성은 하나가 아니었다. 작가와 독자, 시간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다가오듯 인생도 실패처럼 느껴진 시간을 지니고 보니 그 시간 순간순간이 완성된 삶이었다. 항상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 겸손은 자만심을 버려야 가능하다.

완성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림도 인생도 끊임없이 깔 맞춤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오늘 나와 어울리는 색이 내일은 바뀔 수 있고, 지금 어색한 조합이 훗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도, 나중에는 미완으로 보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인정하니 삶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진짜 완성이란, 이제 완성됐다고 말하는 순간이 아니라, 아직 맞추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자기 삶을 단정 짓지 않는 태도, 스스로를 하나의 열린 작품으로 남겨두는 겸손. 그 겸손 속에서 나는 비로소, 이미 충분히 잘 그려진 그림처럼 편안히 살아가는 중이다. 진짜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