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두어도
학창 시절, 붓에 물감을 묻혀 도화지를 채우던 때를 기억한다. 분명 색을 조금만 더하면 근사해질 것 같았는데, 덧칠을 하면 할수록 그림은 엉망이 되어갔다. 축축하게 젖은 종이 위로 조급한 붓질이 지나갈 때마다 색은 탁해졌고, 종이의 결은 물러 때처럼 밀려 나왔다. ‘조금만 더’ 하려던 그림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채화는 기교보다 기다림이 더 중요하다.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어 온전히 마를 때까지 멈춰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조급한 붓질을 해대면 그림은 번지고 얼룩지며 탁해진다. 탁해진 색은 아무리 덧칠해도 다시 맑아지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절대 건드리지 말 것.
살다 보니, 이런 장면은 도화지 위에서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주 내 삶에서도 반복됐다. 가장 잦은 덧칠은 언제나 자신을 향했다. 뭐든 시작하자마자 변화를 기대했다. 몇 번 써보지도 않은 글에 완성도를 요구했다. 반복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건너뛴 채 결과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줄기를 잡아당기고 있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자기 점검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과잉 개입으로 변한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잘하고 싶어 시작한 성찰이 어느 순간 결점을 파헤치는 집요함으로 바뀐다.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부족함만 들춰내는 태도는, 마르지 않은 종이를 붓 끝으로 계속 건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삶의 많은 문제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건드려서 생겨난 것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멈췄다면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을 파고들다 망쳐버리고, 가만히 두었더라면 제자리를 찾았을 텐데 조급하게 흔들어 놓았다. 필요한 것은 파고드는 집요함이 아니라 멈출 줄 아는 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의 완성은 모든 공간을 채우는 데만 있지 않다. 마음이 머물 여백을 남겨두는 것도 억지로 붙잡지 않고 흐르게 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 의도적인 멈춤이 오히려 그림을 멋지게 살리기도 한다. 삶도 그런 것 같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 때로는 손을 떼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충분히 손을 댔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건 더 해야 할 때가 아니라 멈춰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조금만 덜 애써도 괜찮다.
조금은 그냥 두어도 괜찮다.
당신의 삶은 이미 충분하게, 예쁘게 색칠이 되어 있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