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막이 고수레

하늘의 선택을 받은 사람

by 이윤경

비싼 돈 주고 산 신발이 두 번 신고 밑창이 벌어졌다. 1†1만 사다가 큰맘 먹고 신상 바지를 샀는데 한 번 입고 보풀이 일었다. 노상 사던 립밤을 선물 받았는데 포장도 못 뜯어보고 잃어버렸다.



나는 꽝이 없다는 뽑기에서도 꽝을 뽑는 여자다. 잘 되던 것도 내가 건드리기만 하면 일이 꼬인다. 한 번에 갈 길을 못 간다거나,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이 힘들어지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큰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심지어 횡단보도에서 우르르 많은 사람들과 걷다가도 나만 차에 받히기도 한다. 성격이 급한 것도 아니고 내 실수도 아니다. 아무리 천천히 침착하게 몸가짐을 노력해도 그냥 막 꼬인다. 엉뚱하게 잘못은 다른 사람이 하고 항상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억울한 인생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는 게 곤욕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까 매일 불안했다.



울고, 짜증 내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천불이 나다가 화가 났다가 또야? 내가 그렇지 뭐, 역시 난 재수 없는 인간이라니까 신세 한탄하면서 살다 보니 어쩌다 뭔가 잘 풀려도 왜 그러지? 온전하게 좋아하질 못하고 의심했다. 폭풍전야처럼 긴장이 저절로 되었다. 이쯤 되니 간이 커진 건지 단단해진 건지 부작용도 생겼는데 바로 될 대로 돼라 병이 생긴 거다. 해서 뭐 해, 노력해 봤자 똑같은데, 아등바등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는데, 뭐 결국 또 내가 할 텐데 뭐 될 대로 되라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다 괜찮다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성격이 좋다고 했다.



그림이 싫을 때가 있었다. 며칠을 붙잡고 있어도 어색한 선과 어설픈 선만 보였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 칼로 난도질을 하고 싶었다. 죽은 그림은 그려서 뭐 하나. 그리고 싶은 것도 없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한참이나 괴로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시간만 흐른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그 시간이 지나자 나도 그림도 달라져 있었다. 보이지 않던 색이 보이고, 어색하던 선이 편해지고 무엇보다 내 그림에 내가 위로받는 기적을 경험했다. 포기한 것 같았던 그 시간에 나도 그림도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았다.



힘을 잃고, 기대를 내려놓고, 그저 시간을 견디듯 지나가는 순간들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 몸부림치던 시간들은 소리 없이 내면을 강하게 단련시켰다. 그림 한 장이 끝나면 또 다른 그림을 시작하듯, 요즘은 인생도 매일, 매 순간이 끝이자 시작의 반복이구나 생각한다. 가끔은 그냥 그렇게 가만히 견디며 서있어도 괜찮은 거였다. 종이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듯 긴 시간 나는 내 인생의 색을 섞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액막이 명태 키링을 샀다. 그리고 밑창 떨어진 신발과 보풀이 인 바지를 들고나가 고수레 고수레 소리를 내며 미련한 미련까지 싹 다 내다 버렸다. 액막이나 고수레가 진짜 효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재수 없는 인간이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귀갓길에 약국에 들러 립밤도 샀다.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마구마구 샘솟는다. 나쁜 기운은 모두 다 버리고 좋은 마음만 가득 채우며 살아야지. 인생의 큰 시련을 만났거든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가 아닌가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난 하늘의 큰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태어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