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가장 솔직한 유희

즐기기

by 이윤경

​우리는 본래 ‘노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에는 ‘논다’는 단어가 삶의 중심에 있다. 그때는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무언가를 만들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순수한 행위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 감각은 점차 잊혀 간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틀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왜곡된 경쟁이 우리 안의 즐거운 놀이터를 서서히 차단시킨다.


​에세이 쓰기는 그런 놀이의 감각을 톡톡 건드려 나를 깨워주었다. 글쓰기는 더 이상 평가받기 위한 숙제가 아니었다. 어른이 된 내가 나 자신을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장 솔직한 유희이자,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즐겁고 건강한 놀이 활동이었다. 문장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묻고 답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이런 감정의 동요가 불편했다. 나도 나를 몰라서 힘들었다. ‘왜 감정은 뭘까?’, ‘어떤 의미일까?’, ‘ 왜 그랬을까?’ 쉼 없이 밀려드는 과거 삶의 궤적들을 하나씩 해석하다 보니, 결국 모든 생각은 하나의 정점으로 모였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에세이는 그 본질적인 질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고독하고도 따스한 혼자만의 과정이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깊은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심을 다해 써 내려간 내 마음의 언어가 누구의 마음에 닿으면 우리는 서로 연결이 된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며 머뭇거릴 필요도 없다. 글의 재료는 언제나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경험, 스쳐 지나간 찰나의 감정,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들이 모두 소중한 글감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외면했던 감정을 직시하고 흩어진 기억을 정리하며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는 그 어떤 취미보다 나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갖게 해 준다. 덕분에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치유와 성장, 나아가 삶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생각나면 써야지’, ‘언젠가 써야지’ 하며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렸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완벽한 문장은 기다림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글은 완성된 상태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막연했던 생각들이 쓰고 또 쓰는 과정을 통해 문장으로 구체화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다. 복잡했던 인생의 실타래가 풀리면서 삶이 단정해지고 있다.



함께도 좋다. ​혼자가 아닌 함께 쓰는 경험은 색다른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나도 그랬다"라며 고개를 끄덕여줄 때, 내 글은, 나는 비로소 세상과 연결되어 관계를 맺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한마디는 우리를 서로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만든다. 나의 첫 번째 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멈추지 않고 글을 쓰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초고를 쓰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퇴고하는 과정들이 꽤 괜찮은 어른의 놀이가 되어주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토록 무언가에 매달려 본 적이 있었나. 글쓰기가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된 지금 나는 그 과정 자체가 오롯한 행복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놀이터에서 문장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