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독백

산책

by 이윤경

해가 길어졌다. 동시에 낮 기온이 오르면서 점심 식사 후 짧은 산책에도 햇살이 이마를 뜨겁게 데운다. 봄이다.



지독하게 추위를 타는 나는 따뜻함을 단순한 기온의 변화로만 느끼지 않는다. 추운 겨울에는 그저 정지된 듯 모든 게 무겁고 힘들다. 죽고 싶을 정도로 겨울을 심하게 타는 나는 겨울잠을 자는 느낌이 들 만큼 삶이 멈춘 듯 겨울을 난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꽁꽁 언 땅이 녹고 새싹이 얼굴을 내밀 때면 달라진다.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의지가 돋고, 생기가 돌며, 마구 살고 싶다는 마음이 움트기 시작한다. 동물적인 감각이나 자연을 몸으로 느낄 정도의 예민함을 지닌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봄에 맞춰 작동한다. 신비에 가까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생의 감각 뒤에는 늘 불청객이 따라붙는다. 바로 알레르기다.



겨울잠을 자듯 조용하던 이 불청객은 봄이 오면 꽤 요란스럽게, 꽃들이 앞다퉈 피듯 모습을 드러낸다. 기침은 기본이고 가래와 재채기, 콧물, 코막힘, 가려움, 두드러기 등 전신 몸살 기운까지 동원된다. 일 년 중 가장 살고 싶게 만드는 봄에 한 번, 사색에 잠겨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가을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은 1년의 루틴이 된 지 오래다. 참으로 고약한 타이밍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기침 때문에 눈치가 무척 보였다. 지금도 기침은 마찬가지다.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누차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결국 병원에서 소론도를 처방받아야 끝이 난다. 약만 먹으면 난리를 치던 증상들이 씻은 듯 가라앉는다. 약은 내 의지보다 강하다. 햇빛 알레르기 탓에 무심코 밖에 나섰다가 화상 환자처럼 붉게 달아오른 살갗을 보며, 성에 갇힌 공주처럼 살아야 할 팔자인데, 타고난 건 무수리이니 내 인생은 자체로 괴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그 숫자를 건너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숫자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가야 한다. 특히 부모님을 바라볼 때와 거울 속에서 나를 직접 마주할 때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당연한 존재였던 나의 엄마와 아버지가, 이제는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고독한 한 남자와 여자로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 비로소 그분들의 나이를 한 해 한 해 직접 경험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 몸의 삐걱거림을 느껴야 비로소 부모님의 지난한 세월을 이해하게 되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꾸짖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인생에 질척대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사실 누구나 들여다보면 나만 특별히 불행한 것도 아니다. 확고한 신념을 지키며 일관되게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까. 타협 없이 세상의 잣대와 충돌 없이 살 수도 없고, 신념이라는 것 역시 늘 옳고 그름의 경계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견디는 세월만으로도 대단한 삶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많이 한다. 혼잡한 바깥세상과 고요한 내면의 평화 사이, 그 어디쯤을 늘 서성이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삶일지도 모른다.



짠한 인생, 참으로 징한 인생이다.

순발력도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나를 본다. 그 모습이 슬프다가도 어이가 없어 눈물 나게 웃고 만다. 웃프다는 말이 예전에는 가벼운 유행어인 줄만 알았는데, 직접 살아보니 이토록 절절하고 눈물 나는 단어가 또 없다.



알레르기 약 기운에 마치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오늘도 나는 웃으며 울고, 또 울고 웃으며 나의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살고 싶어지는 봄 산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