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
어린 시절부터 그리기는 내게 최고의 놀이였다. 하얀 도화지 위에 마음대로 세상을 그려 넣는 일이 마냥 즐거웠다. 빳빳한 종이에 인형을 그리고, 그 몸에 꼭 맞는 옷들을 그려 오려 내다보면 어느덧 시간은 저녁을 향하곤 했다. 학교에서도 미술 시간은 늘 기다려지는 설렘의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칭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손재주가 좋다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시선이 기분 좋았다. 내 그림은 언제나 샘플이 되었다.
결혼 후, 평생 한복을 지어 오신 시어머님은 나의 그림 취미를 전천후 손재주로 오해하셨다. 평소에도 한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으실 만큼 흐트러짐 없는 어머님은, 조용해 보이는 며느리의 모습에서 가업을 이을 재목을 보신 듯했다. 섬세한 감각이 있으니 바느질도 금세 익히리라 말씀하셨다. 전통을 전수해주고 싶은 욕심에 나를 종로의 한복 학원에 등록시키셨지만, 어머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림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똥손이자 맹탕이다. 내 손끝에서는 늘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무엇 하나 야무지게 마무리된 적이 없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조각보 이불을 만드는 숙제가 있었을 때다. 바늘만 잡으면 이상하게 울화가 치밀었고, 바늘땀은 전쟁터의 흔적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보다 못한 언니가 숙제를 대신해 주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림은 그렇게 잘 그리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 모양이야?"
이 묘한 손재주는 확률의 법칙마저 비껴간다. 언젠가 마트 행사장에서 꽝 없는 뽑기 이벤트에 붙잡힌 적이 있다. 나는 뭘 해도 꽝이 나오는 사람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르바이트생은 절대 꽝은 없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내가 펼친 종이에는 선명하게 '꽝'이라는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 당황한 아르바이트생은 어쩔 줄 몰라했고, 나는 오히려 "거 보세요, 제 말이 맞죠?"라며 깔깔 웃었다. 확률 0%의 꽝마저 잡아내는, 나는 그런 마이너스 손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내력을 모르는 시어머님의 기대가 부담스러웠지만, "저는 소질이 없어요"라고 말해봤자 하기 싫어 핑계를 댄다며 서운해하실 게 뻔해 묵묵히 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서너 시간씩 무아지경에 빠지는 내가, 바늘만 잡으면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바느질 실력도 혹시 나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얇은 실을 바늘귀에 꿰는 단계부터 정체 모를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바느질을 하면 할수록 만화 속 캐릭터처럼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기분이었다. 연필을 잡으면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던 손이, 왜 바늘만 잡으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나는 화를 가득 채우고 주중에는 그 화를 식혀야 했다.
나의 꽝 손재주는 살림에서 절정을 이룬다. 결혼 전에는 솔직히 밥도 안 해 본 지라 결혼한 여자들은 당연히 다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음식, 청소, 빨래 중 무엇 하나 깔끔하게 해내는 법이 없다. 내 손이 닿는 곳마다 물건은 깨지고, 어질러지고, 일감은 쌓여만 간다. 바느질과 똑같다. 억지로 화를 누르며 한다. 딩시 바느질은 눈에 실핏줄이 몇 번이나 터져 시아버님께서 사람 잡겠다며 말리셨다. 시뻘겋게 충혈된 내 눈을 보며 어머님도 욕심을 접으셨는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한복 학원 선생님께서 며느님이 재능이 영 없다고 슬며시 귀띔하시지 않았나 싶다. 참, 시어머님은 내가 만두 빚는 모습도 보시더니 너는 만두는 만들지 말라고 쫓아내시더니 그 후로는 다 만들어 가져가라고만 부르신다.
손재주에도 수많은 결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누구는 만들기를, 누구는 바느질을, 누구는 요리를 잘한다. 흔히 하나를 잘하면 열을 잘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유독 그림이라는 통로 하나만 허락받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험난한 세계에서 똥손의 저주만 받은 게 아니고, 나를 구원해 줄 재능 하나는 남겨주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현실과 기꺼이 타협하며 산다. 청소를 마친 뒤에도 한쪽에 쌓여 있는 짐들을 보면 여전히 한숨이 나지만 더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우리 집은 청소를 해도 늘 이삿날 같고, 요리를 하지 않아도 부엌은 늘 잔치를 치른 듯 정신이 없다. 매번 양말 한 짝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젠 괜찮다. 이렇게 살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더라. 똥손의 저주를 피해 살아남은 소소한 재능,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감사하게 누리며 오늘도 나는 그림을 그린다.
손재주는 하나만 있어도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