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해서 잡다하게 읽은 날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고 잡곡밥처럼 다양하게 찾아 읽었다. 셋째는 소풍인데 내가 깜박할까봐 방문 곳곳에 “도시락”이라는 문구를 써두었다. (딸아, 엄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뭐든 전날부터 꼼꼼하게 준비하는 셋째의 성격) 딸의 문구는 귀여운데 요즘 피곤하고 울적하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며칠 흔들리는 중이다. 어떤 사람이랑 대화하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어떤 사람의 글을 읽으면 묘하게 언짢다. 흔들리기 싫은데 흔들린다. 그럴 땐 활자로 도피한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어떻게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하며 다시 이기적이고도 다부진 자세를 잡고 글에 파묻힌다.
-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은 일본의 초고령사회를 반영하는 짧고 기발하며 유쾌한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다. 우선 활자가 크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어르신들도 편히 읽을 수 있으니까. <실버 센류>는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의 주최로 2001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는 센류 공모전 이름이며 노년 세대의 생활상과 마음을 잘 전하고 있다고 한다. 부정맥인 남편에게 선물했는데 중년인 부정맥 환자의 와이프인 내가 공감하며 슬며시 웃음 짓는 중. 함께 손을 잡자.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_ 가나야마 미치코, 여성, 오사카부, 일흔여섯 살, 무직. (본문 중에서.)
-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는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서울에 가면 ‘멀리서 오셨네요’ 소리를 듣는 대전에 관한 , ‘성심당 말고 갈 데 있나요?’라고 농담을 건네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노잼도시 대전’에 대한, 장소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서울에 살지만 자신의 출신지와의 연결 고리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디나이얼 denial 지방출신’이 있다는데, 나는 지방에 사는 서울출신이지만 누가 울산 무시하거나 서울이 역시 좋다고 하면 괜히 발끈 화부터 내는 이상한 ‘울산 사는 서울 사람’이 되었다. 아무래도 공업도시 ‘울산’이 사실은 바다와 산과 역사를 품고있는 여유로운 곳이라는 걸 이해하고, 느끼고, 가지는 방법으로 ‘나의 도시’화 시켰기 때문이겠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 애정하는 컨텐츠 피식대학의 ‘메이드인경상도’ 영양 편은 그래서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오로지 기준이 서울과 지방으로 쪼개진 이분법의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한 센스있는 내용이었다면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도시를 이해하고, 느끼고, 가지는 방법,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까?”(117p)
“힙하고 핫한 도시 매력이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아름다움과 새로움은 서울에 내어 주고, 당신이 발견한 ‘진짜의 것’으로 #를 달아, 그 성과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다.”(146p)
-<한겨레 5월 22일자>
에는 12살의 기후소송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 서울대의 디지털 성범죄물, bbc의 버닝썬 다큐 등 분기탱천할 만한 뉴스들이 역시 가득했다. 이런저런 기사들을 보며 한숨 짓는데, 정말 한숨 짓는 짤막한 기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나의 먹고 사는 일만 중요한 보잘것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가장 사랑하는 과일 ‘파인애플’ 가격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문을 덮는다.
“지난달 바나나와 파인애플 수입액이 동시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_연합뉴스, 한려레 11230호, 14면.